영국견문 바닷속에 던져진 한 노예무역상의 동상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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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윰윰쾅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14회 작성일 20-07-31 19:03본문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는 구호로 촉발된 인종차별반대의 시위는 서구의 뿌리깊은 인종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고 곧바로 영국에서도 이어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에는 영국의 일부 시위대들이 17세기 노예무역상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이를 근처 바닷가에 빠뜨리는 영상을 뉴스를 통해 꽤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도시가 바로 필자가 거주하는 브리스톨이다.
▲ 성난 시위대에 의해 바다속으로 던져지는 콜스톤 (Colston) 동상
에드워드 콜스톤의 모순된 삶
동상의 모델이 되었던 에드워드 콜스톤(Edward Colston)은 브리스톨 출신의 상인으로, 섬유와 비단, 와인과 석유를 거래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한편으로 그는 84,000명에 달하는 흑인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에 팔아버린 노예무역상으로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콜스톤 동상이 세워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콜스톤은 노예무역 등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이용해 병원과 교육시설을 짓고 교회와 자선단체를 후원하며 빈민주택시설을 개선하는데 정열을 쏟았다. 그는 생에 걸쳐 빈민구제에 당시 화폐 기준으로 약 7만 파운드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를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수천억원에 달한다.
1895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자랑하던 당시 영국에서는 브리스톨의 재건을 이끌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한 콜스톤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건립한다. 그리고 그가 세운 학교와 병원은 350년이 지난 지금도 브리스톨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 처칠은 인종차별주의자다! (Churcill was a Racist)
런던에서는 웨스턴민스터 사원 앞에 설치된 위인들의 동상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도에서 수백만의 아사자를 낸 벵골 대기근의 책임자로 지목된 윈스턴 처칠의 동상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였다. 한편으로 동상을 수호하려는 반대 시위대들이 나선 가운데 BLM 시위대와의 충돌도 빚어졌다.
콜스톤이나 처칠과 마찬가지로 과거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추적하다 보면 인종차별 문제로만 국한에서 살펴보더라도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언행이 종종 발견된다.
아인슈타인은 중국을 방문해서는 ‘모두 똑같이 생긴 중국 여성들에게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기에 중국이 이처럼 많은 인구를 갖게 되었을까?’라며 의문을 표했고, 제국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한 사회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 역시 영국의 인도진출에 대해서는 ‘기존의 낡은 아시아의 전제왕정을 파괴시키고 서구의 물질문명을 이식하는 과정’으로 긍정했다.
서구 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도 현대인들의 기준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차별이 존재해왔다. 청빈을 자산으로 삼으며, 땔나무나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넉넉치 않게 살았던 퇴계 이황은 죽음에 앞서 5명의 자녀들에게 350명에 달하는 노비를 ‘상속’하고 세상을 떠났다.
모든 사람들은 시대가 안고 있는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렇듯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한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물론 그 한계를 깨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각자들의 용기와 도전을 기리는 것이 그렇지 못한 범부들의 삶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흑인 노예를 팔아 치우던 악독한 노예상인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빈민과 소외자 받는 자들을 위한 열정적인 자선활동가로 살았던 콜스톤의 인생보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삶은 많지 않을 것이다. BLM 시위로 촉발된 브리스톨 콜스톤 동상의 철거가 한편으로는 인종문제에 대한 상징으로 남겠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삶이라는 것이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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