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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견문 헬영국, 헤븐조선 ? (2) – 그럼에도 영국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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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윰윰쾅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250회 작성일 19-01-1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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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을 통해 영국의 한심한 행정처리와 그로 인해 겪는 불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한국의 놀라운 업무처리 속도와 그로 인해 얻는 효율은, 해외에 거주해본 사람으로서는 경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편해서 모두가 불편한 한국

모두가 불편해서 모두가 편한 영국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한국의 이러한 훌륭한 서비스의 이면에 소위 헬조선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이른 아침에 시킨 택배를 그날 저녁에 배송 받는다거나, 심야에 치킨을 배달시켜 먹고, 예약할 필요 없이 은행에 찾아가 업무를 보고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것은, 또는 동사무소에 찾아가 그 자리에서 등기를 발급받는다거나 부동산에 불쑥 들어가서 매물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누군가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모두가 불편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나머지 모두가 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덕목이다. 우리는 OECD에서 가장 긴 근로시간을 가진 나라에서 살아간다면서 불평하지만 (사실, 서구 국가가 아닌 싱가폴-홍콩-대만 등 한국과 비슷한 문화를 가진 아시아 부국들의 노동시간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길다), 일부 학자들은 바로 한국인들의 이러한 긴 노동시간이야말로 서구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직업윤리가 한국사회에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서구사회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던 직업윤리가 사실 모든 문화권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예를 든다. 그는 1960 년대 이후의 한국인들이 1950년대 독일인들처럼 엄청나게 일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거대한 경제적 격차를 줄여왔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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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교수는 긴 노동시간으로 대표되는 '직업윤리'가 아시아 국가와 유럽 국가들의 경제격차를 줄어들게 만드는 한가지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서구는 과거 아시아처럼 오래 일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덕목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사회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사회에서 배워야 할 점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성장과 효율의 추구, 열심히 일하는 발전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엄청난 경제적 성취를 일구어왔지만, 그 과정 자체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상당한 스트레스를 안겨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와 제도에 대한 신뢰, 인내심, 절차의 준수 등 사회를 유지-결속시키는 많은 덕목들도 간과해왔다. 어쩌면 이제야 그러한 덕목들을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영국은 이러한 점에서 한국이 잃어버린 (혹은 아직까지 성취하지 못한) 가치를 잘 간직하고 있는 사회다. 이들은 오랜 발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부를 축적하고 여유를 누린 기간도 한국과 비교해 훨씬 길다. 여유로움, 배려심, 신뢰 등이 이러한 토양 위에 싹터왔다.

슈퍼마켓의 계산대 점원들은 의자에 앉아 손님을 대하고, 버스에 올라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동전을 찾아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자유롭게 토론이 오가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정답게 인사하는 모습 속에서는 갑도 을도 찾아보기 힘들다많은 부분에서 영국의 일처리는 한국과 비교해 정말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지만영국인들은 그래도 이를 참고 여유롭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모두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기 때문에한편으로 모두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소위 헬조선은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이나 기득권들만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수직적인 문화, 여유가 없는 조급한 문화, 배려심과 신뢰의 부족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도와 법률의 문제를 넘어서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의 언어나 관습 속에 진하게 배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존비어 체계가 명확한 한국에서 과연 한참이나 나이 어린 동생들이, 조카 같은 후배들이 이름을 부르며 맞먹으며 드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이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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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발전된 국가들 가운데 타인에 대한 신뢰가 가장 낮은 수준의 나라다. 저신뢰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노쇼

 

어떤 사회가 옳거나 나은지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서로 다른 사회는 상이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고, 이를 일반화하여 비교하는 것은 때문에 항상 조심스럽게 다뤄야할 문제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는 외국에 대한 섣부른 동경이나, 무턱댄 헬조선 풍조를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영국 사회의 여유로움, 영국인들의 인내심, 배려심은 효율성과 빨리빨리만을 추구하는 한국 사회에 교훈이 되는 점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출처: TED/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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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 공감가는 글입니다.
독일보다 1,000시간을 더 일한다니..
그런데도 주 52시간 시행할 때 얼마나 잡음이 많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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