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견문 영국에서 느낀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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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윰윰쾅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5,085회 작성일 18-05-16 07:00본문
상투적 표현일지 모르지만 영국은 정말이지 인종의 전시장이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겪은 아프리카나 인도-파키스탄 지역의 사람들에서부터 중동, 남미, 그리고 수많은 아시아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는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인종이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사람으로서 느끼는 한국과 동아시아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아시아인은 모두 중국인?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수도 꽤나 많지만, 상당수는 런던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있기 때문에 필자가 거주하는 서남부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은 편이다. 반면, 중국인들은 어디를 가나 자주 볼 수 있다. 수많은 중국식당, 중국마트 그리고 중국인이 경영하는 이발소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은 내가 사는 이 중소도시에도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매년 음력 설에는 학교에서 ‘Happy Chinese New Year’ 라는 이메일을 모든 학생과 스태프에게 돌리기까지 한다!)
인종적 편견을 갖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솔직히 한국에서 중국인들의 인기는 전반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정치적, 역사적 혹은 경제문화적 이유로 말미암아 중국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 때문에 처음 외국에 거주하면서 중국인 대우를 받을 경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심지어 중국인들이 중국어로 길을 물어오는 경우에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외국인들의 이러한 반응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한국의 위상이 과거보다 많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과 한국문화는 이들에게 낯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거대한 국가 사이에 위치한 나라에서 태어난 이들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아직까지 우리의 이미지는 이 두나라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어정쩡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케이팝이 아시아를 휩쓸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상당 수의 영국인들에게 ‘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남과 북의 대치, 개고기 그리고김정은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할 경우 십중팔구 들을 수 있는 질문은 여전히 "South? or North?" 이며 그 이후엔 김정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필자의 영국 지인들 중에는 런던에 살면서도 한국인을 한번도 만났던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거나 (그냥 아시아인들은 다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의 랜드마크로 평양의 류경호텔을 떠올렸다고 고백하거나 한국과 중국 (혹은 북한이나 일본)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과 중국, 혹은 일본이 다른 나라냐고 물어보는 수준의 질문들은 없었던 것으로 치자)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강한 민족정체성을 주입받고 자라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은 때론 당혹스럽고 때론 나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이 무지의 소산일 수는 있어도 차별적이거나 공격적 의도를 담은 언사인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많은 영국인들은 정말로 동아시아 지역에 무지하고 큰 관심도 없다. 더군다나 이들이 만난 아시아인의 90%는 중국계 였을 것이고, 더해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들만큼 ‘민족주의적’ 이지도 않다. 이들이 위와 같은 언급을 한다면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들을 무시하고 비하한다기 보다는 정말 무지하거나 혹은 순수하게 궁금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중국인 ‘취급’에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우리 안에 있는 중국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의 발로가 아닐까?
한편으로 필자는 영국에 거주하면서 중국인 혹은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 적이 많다.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것, 문화와 정서가 비슷하다는 것
필자가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아직 낯설고 어두운 영국의 밤거리를 걷는 일은 고역일 때가 있었다. 영국의 많은 길거리는 한국과 비교하면 암흑이라고 해도무방할 정도다. 한국의 밤거리가 백색 LED조명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것과는 달리 영국의 많은 지역은 아직까지 어둡고 붉은 나트륨 가로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고, 거리를 다니는 인적 또한 드물다. 아직까지 길도 낯선 골목골목을 익숙치 않은 다른 인종들 (밤에 이들을 마주칠 경우 모두가 불량배처럼 보였었다!) 사이로 통과해야한다니! 이러한 상황에서 길거리를 지나가는 한 무리 중국인들이라도 있으면 웬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한국의 어두운 밤거리에서 중국어를 쓰는 무리를 마주친다면 웬지 모를 위협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다. 비슷한 모습, 비슷한 생김에서 오는 친근함과 편안함이 이 정도일 줄이야.
더해 아무래도 중국이나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전혀 다른 문화적 정서적 배경을 지닌 외국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비하면 쉬운 일임엔 분명하다. 문법에 어긋난 콩글리시를 사용해도, 다소 엉터리 같은 발음으로 이야기해도 아시아인들 사이의 영어에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래도 비슷한 정서와 어려움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느낄 수 있는 유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또한 실용적 이유에서도 외국에 사는 중국 혹은 아시아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가많다. 아무리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팔라펠을 접해도 때때로 밀려오는 밥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는 곳은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오리엔탈 마켓이다. 유럽인이 주방장으로 있는 스시집보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라멘집의 맛에 더 믿음이 간다. 또한 서양인과 다른 두상, 모질을 갖고 있는 필자의 이발을 책임져 주는 곳은 홍콩인이 관리하는 미용실이다. (멋모르고 서양인 미용사들에게 머리를 맡기고 낭패를 경험한 지인이 한두명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를 넘어
몽골리언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동아시아인들은 상대국 사람을 표현할때 째진 눈, 튀어나온 광대뼈로 서로를 묘사한다고 한다. 즉, 자신도 동아시아인이지만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의 외양적 특질을 거부하고 자신을 유럽인으로 여기면서 아시아인들의 외양적 특징을 비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서구를 동경하면서 우리와 가장 비슷한 문화와 외양을 가진 동아시아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지는 않을까.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 21세기, 유럽인들 끼리는 서로 여권도 필요없이 신분증 하나로 국경을 넘나드는 이 때에 같은 아시아인임에도 서로 대립하고 반목 하고만 있는 동아시아의 상황은 불행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혹은 부정하고 싶어도 한국과 일본, 중국은 지구가 둘로 나뉘지 않는 이상 함께 해야할 숙명적 이웃이다. 이러한 이웃과 언제까지 원수처럼지낸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마음 속의 편견과 선입견을 떨치고 주변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으로 더 잦은 교류를 해보는 것. 서로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고 나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상생과 번영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국에서 살다보면 한 번쯤은 겪는 일일듯..
지나가면서 '니 하오?'하고 인사하는 영국인이란.. ㅡㅡ;
ghlagh님의 댓글
ghlagh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 영국에서는 한번도 안겪어봤는데
두바이에서 시도때도 없이 특히나 몰 같은데서 호객꾼들..
ㅡㅡ 나중에는 그냥 나도 '니 하오' 나 '곤니치와' 로 그냥 받아쳤어요
어떤한국분이 그나마 그건 좀 낫다고 자기는 필리핀말로 한다고 ㅋㅋㅋ
롱롱또님의 댓글
롱롱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국적과 상관없이 백인들에게 '헬로' 라고 첫 인사를 건낼 때를 생각하면 영국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니하오'라는 인사에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머리로는 그렇지만 여전히 니하오라는 인사를 받을 때면 한국인이라고 꼭 짚고 넘어가긴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