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 영국의 명품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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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돌아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6,010회 작성일 17-08-11 18:01본문
“명품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수년 전에 한 유명 정치인이 국내 도시를 ‘명품 도시’로 만들겠다고 큰 소리친 적이 있다. 이때 어느 예술가 한 사람이 신문 칼럼에서 ‘명품’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며, 급조된 ‘명품’이란 어불성설이라고 일침을 놨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명품’에 대한 사회적 로망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예술가가 지적한 것처럼 명품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절 쌓아 온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켜 온 무언가가 있어 하나의 이야기(story)가 history가 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영국에 살면서 늘 이 나라가 부러웠던 건 바로 그런 명품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명품이 때로는 관광상품으로, 때로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잘 포장되고 지켜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사진1> 영국인들에게 세상의 끝 "Land's End"
지난 며칠동안 영국에 다시 다녀왔다. 올 초 귀국 당시 왕복티켓을 과감히(?) 발권 받아 온 탓도 있지만 영국 생활을 그리워하는 가족을 위해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맞아 영국 행을 감행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방학 내내 머무를 계획이었고, 필자는 잠시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필자가 영국에 도착한 후 가족과 함께 예전에 영국에 사는 동안에는 가보지 못했던 몇몇 지방 도시들을 다녀오는 기회를 가졌다.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워드워즈 그리고 비틀즈의 고향
이번에 가본 곳은 영국의 콘월지방과 호수지방(레이크디스트릭트)이었다. 중간에 리버풀도 들렸다. 콘월지방에는 과거 영국인들이 세상의 끝으로 알았다던 Land’s End가 있고, ‘어바웃 타임’이라는 대단히 영국적인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가 여름 휴가를 보낸 st. Ives 등 유명인들의 여름 휴양지로 여전히 인기가 있는 곳이다. 레이크디스트릭트 역시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이 있고, “초원의 빛이여”를 노래한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드워즈의 고향이 있는 곳이다. 리버풀은 좀 더 대중적인 장소로, 팝스타 비틀즈가 최초로 결성되어 활동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2> 워드워즈의 낭만시가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던 레이크 디스트릭트
물론 이런 곳들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영국인들도 콘월 해변가에서 서핑과 해수욕을 즐길 뿐 버지니아 울프를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레이크디스트릭트도 트래킹을 위한 장소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 리버풀에 가서도 안필드에서 열리는 리버풀의 축구경기는 볼지언정 비틀즈가 처음 공연을 했던 카번 클럽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지 모른다. 오히려 나와 같은 외지인에게는 찍고 와야 할 관광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영국의 지방 곳곳에 보석처럼 간직되어 지켜지고 있기에 그 지역의 가치가 유지되어 왔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키면, 이런 저런 스토리가 저절로 입혀진다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힘들다. 길가에 놓인 나무 한 그루에서부터 한 나라가 지닌 역사와 문화, 지난 시대의 의미 있는 가치들을 지켜낸다는 것은 때론 성가시고, 시대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지켜온 나무는 백 년이 지나 울창한 숲과 공원이 되어 도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역사와 문화는 훌륭한 교육적 자료와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저런 스토리가(story)가 자연스럽게 입혀져 있다.
<사진3> 제2롯데월드, 당장은 좀 자랑거리 되겠지만 과연 서울을 상징하는 명품이 될 수 있을까
늘 해외 여행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를 좀 더 많이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도 좋은 산과 자연, 사찰과 유적지 등이 많다. 그런데 그런 유형의 무형의 자산들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더 중요시하고, 지키는 것 보다 변화하는 것이 더 급했던 우리의 힘들었던 지난 날 때문일 지도 모른다. 사막 한가운데 선 버즈 두바이나 우리의 제2롯데월드가 꽤나 근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높고 최신식의 건축물들은 계속 생길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오래 자랑거리가 되기는 힘들다. 새로운 것은 또 다시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뿐, 어떤 스토리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하지만 지켜낸 ‘무엇’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의미를 갖게 된다. ‘명품’이 되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 꾼이 되자
이에 덧붙여 나이 든 이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결국 사람을 통해 전해지고, 덧붙여짐으로써 더 큰 의미와 재미를 갖추게 된다. 나이 든 이들은 “좋은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지난 시간, 그들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과오와 성과, 추억 등을 전하는 것이고, 곧 “story”를 다음 세대에 전해 줌으로써 다음 세대가 앞선 세대를 넘어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쉽게 말해 “history”가 중요한 이유이고,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가 그리운 이유이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옛날 이야기가 점점 그리워진다.
<사진4> 옛날 이야기가 꼭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될 필요는 없다
(사진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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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아 다시 영국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