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 비와 영국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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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돌아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348회 작성일 16-05-11 20:34본문
오늘 런던에는 비가 왔다. 지난해 여름 영국에 온 이후 오늘처럼 비가 반갑고 시원하게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난주 내내 이 곳 영국의 날씨는 너무 좋았다. 4월 말까지만 해도 우박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지만, 5월 들어서면서 정말로 청명하고 따뜻한 날씨가 일주일간 계속되었다. 그래 봐야 낮 최고기온이 21~24도 정도였지만, 영국사람들이 때이른 무더위에 여름햇살을 즐기려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강렬한 햇살에 어린 아이들까지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고, 길거리나 공원에서 웃통을 벗은 남자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햇살만큼이나 밝고 다소 흥분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사진1> 어느 청명한 봄날, 영국 공원 모습
스모그의 나라, 환경에 대한 관심 높아
영국의 날씨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럽대륙 서해안에서 나타나는 서안해양성 기후로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온난한 편이다. 기후변화가 심하고,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많으며, 과거에는 안개와 공해가 심해 ‘스모그’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대체로 좋은 날씨를 기대하기는 힘든 곳이다. 과거 산업화로 인한 공해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영국사람들은 대기 오염이나 공해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높다. 지난해 독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 당시, 영국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해 왔던 폭스바겐의 판매량이 급감하는 등 후폭풍이 상당했는데, 지금도 영국 언론은 차량의 배출가스와 관련된 정부 기준을 강화하라고 요구하는 등 대기오염의 주범인 배기가스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열린 UN기후변화 협약에서 각 국 정상들이 합의한 ‘파리 협정’에 따라서 세계 각 국은 지국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매 5년 마다 이를 점검하기로 하는 등 인류 공동의 문제에 적극 대처키로 했다. 당시 런던에서는 총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여 각국 정상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는데, 영국의 여배우 엠마 톰슨이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노동당 코빈 당수 등이 참여하기도 했다.
환경문제에 대한 영국인들의 관심은 영국에서 처음 유래한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운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탄소 발자국’은 사람의 활동이나 상품을 생산, 소비하는 전 과정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CO2)로 환산해서 상징화한 용어다. 표시 단위는 무게 단위인 kg 이나 우리가 심어야 하는 나무의 수로 나타내기도 한다. 가령 BBC는 매년 이와 관련한 캠페인을 통해 사회 각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지 추적 보도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연례 보고서를 통해 BBC 내부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실적을 공개하기도 한다.
사진2> 지난해 기후변화협약의 합의를 촉구하는 런던 시위
비와 바람이 전해주는 맑은 공기
한편, 영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이나 아프리카로부터 불어오는 대기오염에 대해서도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봄철 황사와 같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 바람이나, 유럽 대륙에서 날라오는 오염 물질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영국 기상청의 입장은 다소 지나친 우려라는 분석이다. 즉 영국은 잦은 비로 인해 공기중의 오염물질이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면서, 과거 스모그라는 단어를 계속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주처럼 며칠 비가 오지않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면, 오히려 대기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영국의 잦은 비와 바람이 오히려 이곳의 공기를 맑게 유지해주는 요인이라는 반증이다.
사실 영국의 연간 강수량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잦은 비와 바람은 이 나라 사람들의 오랜 생활 습관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1년중 5월부터 불과 3~4개월 정도만이 비교적 건조하고 따뜻한 날씨를 보일 뿐, 대부분의 날씨는 시도 때로 없이 뿌리는 비와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비가 와도 좀처럼 우산을 쓰지 않고, 모자만 쓰고 다니냐고 한 영국인 친구에게 물으니, 비가 오다 가도 금새 하늘이 개니 우산이 다소 거추장스럽고, 강한 바람에 우산이 부러지는 경우도 많아 그냥 우비나 후드 코트를 입고 다니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사진3> 영국의 집은 대개 뒷 편에 정원이 있다
"집안에만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
또한 우중충한 날씨가 지속되다 보면, 집안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영국인들에게 있어 집은 매우 중요한 휴식처이자, 여흥의 장소이자, 때론 이런 저런 소일거리를 제공해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차(茶) 문화가 발달하고 각종 인테리어와 집안을 장식할 꽃과 화분, 그림 등은 우울한 날씨를 보내는 영국인들에게 일상의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또한 집집 마다 작더라도 영국인들은 정원을 두고 있는데, 이를 가꾸고 돌보는 일은 이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과다. 마트마다 가드닝(gardening)을 위한 코너가 반드시 마련되어 있고, 동네 마다 크고 작은 garden center나 화원들이 있어 사시사철 영국인들은 이곳을 찾는다. 한가지 특이해 보이는 것은 영국의 정원은 주로 집 뒷 편에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그들에게 있어 정원은 남들과 공유하지 않는 나 만을 위한 안식의 공간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영국에 살면서 기후나 날씨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성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느낀다. 처음에 영국에 와서는 다소 냉소적이고, 비 사교적으로 보이는 영국인들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한 경우도 많았지만, 그런 날씨 속에서 나름대로 예쁘게 집안을 꾸미며, 그 안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요즘은 부러워 보이기기도 한다.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보다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영국인들에게 집은 단순히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나와 가족의 삶과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절대적인 공간이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한국에서도 요즘 바깥 활동이 많이 제약받고 있다.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만약 앞으로 집안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면 영국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경험이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사진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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