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 오래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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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돌아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296회 작성일 16-06-22 22:31본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일명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곳 영국에서는 최근 몇 주간 모든 언론과 여론이 마치 블랙홀처럼 이 국민투표에 빠져들어 왔다. 심지어 '유로 2016' 축구 경기가 한참 열리고 있는 지금도, 잉글랜드와 슬로바키아의 예선 최종 전 결과가 국민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한 여론조사가 발표되기도 한다. 6월 23일(목)에 있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최근 영국의 가장 핫(hot)한 이슈인 셈이다.
그간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Leave’ 진영과 잔류를 주장하는 ‘Remain’ 진영은 서로 격렬한 여론전을 펼쳐 왔다. 캠페인 초기에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잔류 가능성을 높게 점쳤으나, 점점 탈퇴 여론이 높아가더니 급기야 지난주부터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탈퇴 여론이 잔류 여론을 최대10% 이상 역전하면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현실화 되는 분위기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럽연합의 각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 등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들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사진1> 영국 의사당 앞 잔디밭
조 콕스 의원 피살 사건, 움직이는 여론
이 와중에 지난 주 16일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영국의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이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괴한에 의해 피살당한 것이다. 42살의 이 여성 의원의 사망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기울고 있던 여론을 흔들어 놓고 있다. 아직 투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만약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가 결정된다면, 아마도 이 피살사건이 결정적으로 여론의 향방을 바꾼 전환점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독 영국인들의 사자(死者)에 대한 애도의 마음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특히 영국의 신문과 방송은 사망사건 또는 부고 기사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주로 일회성 기사로 끝내고 마는 우리나라의 언론보도와는 차이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조 콕스 의원의 사망사건 뿐만 아니라 지난 4월에 사망한 팝스타 프린스에 대한 언론보도의 경우, 사망 초기 그의 음악적 업적과 개인 생활에서부터 사망의 원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달 이상 영국 언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오래 기억하며 사는 사람들
이와 같이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영국인들의 남다른 관심과 추모는 단지 유명인사들에게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사고로 안타깝게 희생된 어린아이에서부터 학교 폭력으로 희생된 10대 청소년, 파트너에게 희생당한 여성 등, 안타깝게 희생된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 대한 추모와 관심, 기억을 위한 기록의 과정은 사건 초기 잠시 화제가 되었다가 금방 잊혀져 버리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필자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한 학생이 통학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 아이가 건너던 그 거리에는 아직도 많은 꽃다발과 추모의 편지들이 놓여 있어 오가는 이들의 기억과 함께 하고 있다. 학교 당국과 지역사회의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2> 강남역 10번 출구
최근 우리나라 강남역 한 건물에서 피살당한 20대 여성의 죽음을 추모하는 열기가 뜨거웠다고 들었다. 사건과 관련해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 대한 논의도 있었을 터이고, 특히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추모의 포스트 잇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그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볼 수 없는 필자로서, 그와 같은 추모의 열기가 지금은 어떤 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다소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영국에 와서 지난 1년 간 살면서, 다소 냉정해 보이고, 덜 사교적인 영국인들을 대하면서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금방 친해지고 사귀는 한국 사람들 하고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기가 참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요즘은 금방 친해지거나 관심을 보이지는 않지만 오래 기억하려 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오히려 좋아 보이기도 한다. 떠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기억일 것이고,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따스한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안타까운 사고라면, 더더욱 그런 오랜 기억을 통해 그와 같은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작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진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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