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 영국의 음식들, 그리고 그들의 근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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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돌아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6,575회 작성일 16-10-20 05:50본문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유명한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가 스페인의 대중적인 음식인 빠예야 조리법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후 온라인상에서 스페인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이다. 빠예야는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쌀과 함께 해산물, 야채, 콩 등을 넣어 볶아 먹는 음식이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음식이자, 스페인을 찾는 관공객들에게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꼭 한번은 먹어보게 되는 음식이다.
스페인 미식가들을 화나게 한 영국인 요리사
문제는 제이미 올리버가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력있는 요리사라 하더라도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한 스페인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빠예야 요리법을 다소 변형하여 소개한 제이미 올리버의 조리법이 영 못마땅했던 것이다. 전통적인 빠예야에는 들어가지 않는 소시지를 첨가하는 등의 조리법은 스페인 전통음식에 대한 몰이해라고 비난한 것이다. 더욱이 음식에 관한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간혹 조롱(?)받는 영국의 요리사가 스페인 요리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꽤나 상한 모양이다.
<사진1> 스페인의 빠예야(좌) 와 영국의 피시 앤 칩스
스페인의 파예야나 토파스, 이태리의 나폴리 피자 등 자국의 요리법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등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페인과 이태리뿐 만 아니라 프랑스와 심지어 독일에 비해서도 영국의 요리문화는 유럽 내에서 최하의 평가를 받는다. 음식뿐만 아니라 대표할만한 와인이나 맥주 조차 없는 나라이다 보니 (우리가 잘 아는 기네스도 사실은 아일랜드 산 맥주다) 음식과 관련해서는 그다지 내세울 게 없는 나라다.
영국의 대표 음식 '피시 앤 칩스'
물론 영국에도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음식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피시 앤 칩스’ 는 이곳 영국인들에게 가장 대중 대중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대구 살을 바삭하게 튀겨낸 것으로 우리 나라의 생선가스와 비슷하고 감자 튀김과 함께 먹는다. 영국 사람들은 금요일에는 이 ‘피시 앤 칩스’를 주로 먹는다고 한다. 이 밖에도 주로 일요일에 먹는다는 요크셔 푸딩과 로스트 비프가 있는데, 요크셔 지방의 가난한 광부들이 일을 쉬는 일요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비교적 푸짐하게 고기와 야채 푸딩을 먹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진2> 크림티(좌)와 요크셔 푸딩 & 로스트 비프
이 밖에도 간식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괜찮은 먹거리로, 코니시 패스티나 애플 크럼블, 그리고 스콘과 홍차를 함께 먹는 크림티가 있다 코니시 패스티는 바삭한 파이 안에 소고기와 감자, 양파 등을 갈아 넣은 것이고, 스콘은 우리나라에서도 즐겨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클로티드 크림과 잼을 함께 발라 먹으면 꽤나 담백하고 맛있는 빵이다. 홍차와 함께 간단한 오후 간식으로 먹기에 안성맞춤인 메뉴 중 하나다. 이 밖에도 스코틀랜드에 가면 꼭 한 번 먹어보라는 일종의 소시지 순대인 하기스 등이 있다.
필자가 추천할 만한 건 크림티 뿐
위에 열거한 이와 같은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에 대한 견해는 물론 먹어보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두 번 별식으로 먹어볼 뿐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 것이 이 곳에 사는 한국 분들의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위에 열거한 요리 중 스콘과 함께 먹는 크림티 말고는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음식은 없는 것 같다.
한국 음식점도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고, 한국 음식에 대한 평판도 좋아지긴 했지만 이곳 현지인들에게 여전히 중국과 일본 음식 사이의 애매 모호한 퓨전 음식으로 기억될 뿐, 한국의 전통음식이 제대로 자리잡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한국 음식에 대해서는 개고기에 대한 혐오증이 생각보다 심하게 현지인들의 뇌리에 자리잡고 있어 인식을 바꾸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중국 음식점과 인도 음식점은 오래된 이민 전통 때문에 전문 음식점도 많고, 요리의 수준도 꽤 높은 편이다.
<사진4> 런던시내의 한 한국식당
하지만 영국에서 요리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먹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영국인들의 생활 문화 탓이 아닐까 싶다. 또한 새로운 것을 꺼려하는 보수적인 영국인들의 사고방식 역시 다른 음식이나 요리법이 영국 요리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든 요인인 것 같다. 예전에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영국 선수들에게 음식 불평을 했더니, 오히려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단다. 자신들은 영국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좋다고 생각 한다면서… 최근 손흥민 선수 역시 독일 생활에 비해 모든 것이 좋지만 영국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 음식이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요리에 대한 영국인들의 근자감
이곳에 살면서 영국인들의 자존심과 우월감은 생활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중 상당 부분은 나름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근대 전 세계를 호령했던 나라이기에 20세기 이후 다른 열강들에 조금 밀리긴 했어도 많은 부분에서 선진국의 풍미를 갖춘 것은 인정할 만 하다. 하지만 요리만큼은 아무리 필자가 영국을 좋게 생각하려 해도, 좀처럼 그들의 자신감과 우월감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이건 정말이지 영국인들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가 싶다.
(사진 출처 구글)
댓글목록
노팅엄여사님의 댓글
노팅엄여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폭풍 공감 입니다.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지금이야 괜찮겠지만 제가 영국 처음 갔을 때는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커서 쇠고기도 맘놓고 못먹어서 선택의 폭이 더 적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