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 영국 ‘Queue System’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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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돌아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6,855회 작성일 16-03-16 06:53본문
기다릴 것인가 도와줄 것인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종종 아이들이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데, 이때 부모들은 도와 줄까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기다릴까 잠시 망설이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육아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아이가 스스로 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양육 방식이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 부모들의 경우 지나치게 아이들을 의존적으로 키우는 경향이 있어,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으로 키우는 서양 부모들의 양육 방식을 따르라고 조언한다.
영국에 처음 와서 정착하는 과정에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다. 그 중에 가장 낯설고 답답했던 것 중 하나가 ‘Queue System’ 이었다. 아무리 간단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당신 순서가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는 것.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처리할 때면, 늘 이곳 사람들은 ‘기다리면 연락이 갈 것이다’ 라고 말했고, working day로 며칠 정도가 소요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처리해도 될 것 같은 일도 ‘기다리라’는 담당자의 말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단 며칠이 아닌 몇 달이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림> 일단은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source:google>
응급환자도 기다려라. NHS 제도의 양면성
최근 영국에서는 NHS(의료보장제도)의 서비스 질 악화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재정악화로 인한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서비스 질 저하, 심지어 젊은 의사들의 파업까지 겹쳐 그동안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로 꼽히던 의료보장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암 생존율이 유럽내 최저 수준이며<표>, 각종 질병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예방이 제대로 이루어 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급기야는 얼마전 영국의 어린 아이가 GP(동네 의원)에서 제대로 초기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사망한 사건 역시 초기 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아 발생한 NHS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반면에 영국의 의료보장제도는 사회적 약자(노인과 장애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훌륭한 평판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영국이 유럽에서 노인들이 마지막 여생을 보내기 가장 좋은 나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표> 영국의 암 생존율이 저조한 건 초기 진단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source: daily telegraph>
이를 좀 삐딱하게 보면, 결국 영국사람들은 처음엔 무조건 순서대로 기다리게 하다가 최악의 상황이 되면,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정해진 순서대로 일을 처리한다는 원칙과, 가장 약자에게 최대한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원칙은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급격히 늘어가고 있는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거나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과부하 현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령인구가 늘어가고 해외 이민자의 숫자도 늘어가는데, 예산이 부족한 NHS는 인력 충원이 안되고, 그렇다고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개인 시간을 희생해 가며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도 아니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유독 NHS만의 문제도 아니다. 학교 자리 문제나 주택 렌트비 폭등 문제도 결국 같은 이유로 인해 사회내 과부하 현상이 급기야 사회안정망을 찢고 터져 버리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꼴”
물론 이런 문제가 영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인구 노령화와 이민자 증가 등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거나 이에 관한 대책에 고심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마냥 기다리라면서 순서 만을 고집하는 영국의 ‘queue system’이 오히려 이러한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다지 빠르게 일 처리를 하지도 않으면서, 사안의 경중도 따지지 않고 기다리라고만 하는 업무 방식은 초기에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 병을 키우거나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니 말이다. 그러다가 최악의 상황이 되면 소셜 케어로 확실히 지원해 준다 한들 ‘사후 약방문’ 꼴인 셈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꼴”이라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예산이 더 많이 들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무엇이 더 시급한 일인지, 실무적인 판단을 통해 사안의 경중과, 선후를 구분하여 일을 처리하는 유통성이 아쉽다.
유연한 사고 방식이 필요할 때
영국은 분명 우리보다는 앞서서 사회 발전을 경험한 나라다. 경험을 통한 교훈으로 비교적 안정된 사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속칭 ‘Queue System’ 역시 그런 원칙하에 운영되는 사회 시스템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회내 제도와 문화, 가치관 역시 그에 맞게 적절히 변해 가야만 그 사회가 온전히 발전해 갈 수 있다. 더욱이 그 변화의 속도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유연한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무래도 아직은 한국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스스로 해결하길(되길) 기다리거나, 순서대로 처리한다는 원칙을 고집하며 뒷짐지고 바라만 보는 영국인들의 생활방식은 냉정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서로 도와 가며 사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더 나쁜 상황에 처하기 전에 살짝 이라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위해, 사회 전체를 위해서 더 이롭고 나은 것이 아닐까.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반갑습니다. ^^ 첫 연재네요.
런던디자인에이전시님의 댓글
런던디자인에이전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감사합니다. 정말 제게 도움되는 글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