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견문 대구를 또다른 됭케르크(Dunkirk)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윰윰쾅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732회 작성일 20-02-26 18:41본문
It's go viral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바이러스는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주어왔다. 암 치료도 가시권에 들어온 현대에 감기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걸 보면 바이러스의 변이는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은 최근 중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는 마비되고 사람들 사이에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한 대처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한국의 투명성과 개방성이 확진자수 급증의 배경에 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중국인 입국을 차단하지 않았다는 불만, 신천지 교회에 대한 비판까지 혼란한 시국에 상호 비방의 여론이 언론과 온라인을 뒤덮는다.
인간에게 있어 바이러스처럼 쉽게 확산되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증오심, 이타심, 사랑과 배려의 감정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증오와 불신으로 분열되는 공동체는 망하고 이타심과 배려로 단합하는 사회는 번영을 누렸다는 것은 인류역사의 보편법칙이다. 찰스 다윈 역시 이기적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집단과 이타적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경쟁관계에 놓였을 경우 이타적, 협력적 집단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신종 바이러스는 언젠가 잠잠해지겠지만 어쩌면 한국사회에 그보다 더 큰 상흔을 남길 것은 바로 바이러스처럼 퍼진 불신과 증오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1940년 5월의 영국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1940년 5월의 영국 역시 국가적 위기에 봉착해있었다. 벨기에 됭케르크의 수십만 영국-프랑스-벨기에군이 나치독일군 앞에 전멸될 위기였던 것이다. 영화 됭케르크로 잘 알려진 이 위기 속에서 영국인들이 느꼈던 공포는 현재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던 것 같다. 영국 왕실은 캐나다로 망명을 생각할 정도였고, 영국정부는 독일군 상륙에 대비하여 전국의 모든 교통표지판까지 다 뽑아버렸다고 한다 (독일군이 길을 찾지 못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낚시배, 요트, 뗏목까지 동원해 자발적으로 집결한 영국 시민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수작전으로 알려진 ‘오퍼레이션 다이나모’를 수행해냈고, 이는 힘을 비축한 영국이 반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1940년의 영국과 2020년의 한국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다던 그 이후 영국도 많이 쇠락해서, 이제는 브렉시트 이후 Small England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상전벽해하여, 이제는 외형적으로 영국에 크게 뒤질 것 없는 나라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과 영국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더 이상 외형적 자본이 아닐 수도 있다. 공동체의 번영과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그보다도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 단합력과 같은 무형의 자본일지도 모른다. 경제발전에 신뢰와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퍼트남(Robert Putnam)의 말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의 개개인간 신뢰는 OECD 국가들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 정부와 제도에 대한 믿음에서 한국은 선진 국가들 가운데 바닥을 형성하고 있다.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영국인들과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고 인사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삶의 태도가 공동체의 번영이나 협력적 사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양국 시민들이 낯선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정치인들의 행태와도 이어지는 것 같다. 양국 모두 외형적으로 민주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브렉시트와 같은 국가적 변혁의 시기에 단합을 호소하는 영국정치에 비해 All or Nothing의 태도로 다른 세력을 공격하는 한국정치 하에서 공동체는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이러한 차원에서 적폐세력이니 빨갱이니 하는 말을 일삼는 사람들이야말로 타세력을 같은 공동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신뢰와 협동의 미덕
사실 한국이야 말로 공동체주의가 매우 강한 사회다. 오히려 오지랖이라는 말이 대표하는 것처럼 한국의 공동체 지향은 개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개인주의의 미덕이 자리잡기도 이전에 공동체의 미덕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그 간극을 이기심과 불신이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동체의 단합과 신뢰의 증진, 이를 통한 번영을 추구해야 할 정치, 언론, 지식인들 마저 당파적 당리당략에 빠져들고 있음은 바이러스보다도 더 큰 사회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임소재를 따지고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이 위기를 이겨낸 다음이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단합의 바이러스를 통해 코로나를 이겨낼, 대구를 또다른 덩케르크로 만들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출처: 구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