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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영국 발음이 그리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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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번진짜안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431회 작성일 08-10-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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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칼럼 슬라이딩 10월호. (이 뭐 또 한 달에 하나 간신히 쓰냐...)

 <<영국발음이 그리울 때면 영국영화 (아흑 내 귀밑머리)>>

 우리나라에 돌아와 몇 년 쯤 지내다 보면 도대체가 영국발음이고,
영어고 나발이고 간에 듣거나, 쓸 일이 없다.
한국어로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주제에 영어와 관련될 수 있는 경우의 수라곤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위치를 알려준다거나,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주고 맥주를 물처럼 마셔야 하는 좁은 클럽에서
외국인과 합석한다거나 하지 않으면 도무지 쓸 일이라곤 없는 것이다.
영어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훌륭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영어 대화 모임에 나간다거나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해석해 준다거나
전화 영어 서비스 나부랭이를 이용한다거나
무엇보다 영어를 잘해 영어를 써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겠지만

 나처럼 지지리 영어도 못하는데다가 게으르고 우리말조차 버벅버벅 발음하며 쩔쩔매는 놈에겐 정말 쓸데라곤 없는 게 영어다.

 그런데 간혹 영어가, 특히 영국 영어가 ‘땡길’ 때가 있다.
그리운 감정이거나 놓치고 싶지 않은 감정을 가슴 속 발성기관이 잡아당기는 것이다. 이걸 어쩌라구.

 그럴 땐 선생에게 귀밑머리를 잡힌 가엾은 학생처럼
 인터넷으로 BBC 라디오를 듣거나 영국 영화를 잔뜩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미국식 영어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영국 발음은
어쩐지 안드로메다어처럼 딱딱하고 생소하게 들릴 때가 많다.
이스트엔드에서 코크니라고 불리는 런던 사투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저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입니?
라는 생각이 대가리를 후려칠 정도였다.

 특히 브릭레인 시장에서 큰 소리로 호객하는 장사꾼들 대부분이 코크니를 쓰고 있었다.
나는 흉내 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지만, 영국발음 하면 일단 그 너절한 사투리가 제일 그립다.

 그래서 그게 다시 듣고 싶고 몸은 한국에 처 자빠져있는 지금,
가이리치의 영화를 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라는 그의 영화를 보면
그런 사투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어이없게도 영화의 재미보다는 발음의 재미에 더 깊숙이
다이빙 하게 된다. 죄다 알아듣지 못해도
 H를 아예 발음하지 않거나 엉뚱한 데 갖다 붙이는 걸
암호처럼 찾고 앉아 귀밑머리를 내리는 1인.

 (가이리치 영화중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스내치>에서는 온갖 잡 영어가 다 나온다.
브래드 피트는 아일랜드 집시 사투리 쯤 되는 걸 쓰고
딴 인물들도 전부 제대로 된 영어 따윈 쓰지 않는다.
나도 출연했으면 콩글리시로 한몫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영화다.
그래서 재미있다.)

 스코틀란드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은 아직도 크지만,
식당에서 일할 때 더러워진 앞치마나 유니폼을 맡기러 가던
세탁소 여직원이 스코티쉬여서 세탁물 찾는 날짜를 묻는 간단한 대화조차 졸라 애 먹었던 기억이 떠오를 땐
<빌리엘리어트>를 본다. 북부 탄광촌 배경인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아직도 그 세탁소녀가 말하던 요일들을 알아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 한다. 내가 못알아 먹으면 성질 급한 그녀는 화를 내곤 했었지.

 “다음 수요일이라고 수요일, 이 길쭉한 녀석아. 못 알아들어? 바빠 죽겠는데.”
 
 어쨌거나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벨은 대단히 재미있는 발음을 하며 감동적인 연기를 선사한다.

 사투리 말고 좀 일반적인 영국 발음, 즉 표준어 - RP(recieved pronounciation)라고 하던데 - 를 듣고 싶을 땐
휴 그란트가 나오는 영화의 귀밑머리를 잡아당기면 된다.
이 사람은 옥스포드 출신이라 그야말로 정제된 표준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 같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뉴스 같은 곳에 나와서 뭐라뭐라 떠들 때도 발음이 참 듣기 좋았는데
<러브 액츄얼리>에서 휴 그란트가 총리 역을 맡으니 어쩐지 딱 어울리더라.
뭐랄까 혀가 딱 부러질 것처럼 또박또박 말하는 바로 그 점에서 총리 포스였거든.

 휴 그란트는 필자가 좋아라하는 멋진 배우이고,
출연작도 대부분 재미있어서 영국발음 갈증(?) 같은 걸 해소시키기 매우 적당하다.
개인적으론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어바웃 어 보이>에서의 불쌍한 휴 그란트 스타일을 퍽 좋아한다.

 그 외에 어퍼 클라스가 쓰는 영어가 있고 왕실영어가 있다는데
어퍼 클라스에선 줄임말이 거의 없다고 하고,
왕실 영어에선 숙어나 관용구를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건 뭐 나 같은 평민이 들어본 적이라곤 없으니 말할 건더기가 없다.
 
 여하간, 영국 발음의 어쩐지 불편하게 턱턱 걸리는 느낌이 주는 매력에
하악하악 하는 발음 오덕이 된 나로선 이렇게 영국영화들이나 쭉쭉 빨아서
 해갈하며 얼른 다시 갈 기회와 찬스를 노리는 수밖에.

 (아흑. 내 귀밑머리! 고만 좀 땡기라구. ‘스킨스’ 따운 받아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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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ina님의 댓글

no_profile jina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ㅋㅋ 전 에든버러살아서 ㅋㅋ 스코틀랜드 억양이 좀 강한데 ㅎㅎ 가끔 런던에서 오는 고객분들중, 코크니 쓰시는분들만나면 ㅋㅋ 서로 정신없어서 ㅋㅋㅋ    어퍼클라스..좀 예전영어를 그대로 쓰는경향이 있는거같아요. ㅋ 그나저나 ㅋㅋ 글 잼있게 잘쓰신듯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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