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 Momma Mia 에그머니나, 씨의 반짝이 디스코 쇼킹 컬춰 쇼
페이지 정보
작성자 15번진짜안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8,681회 작성일 08-11-05 16:26본문
(정모 이후 예전글 리메이크로 게시판을 다시 채워 보기로 했습니다. 수준 낮고 길어터진 글이지만 큼지막한 자비를 구합니다. 굽신굽신.)
2003년, 겨울, 런던,
맘마미아. 웨딩드레스를 입은 입 큰 여자가 남사스럽게 웃고 있는 포스터가 더블 데커 광고판이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옆 볼때기에 매달려 있건 말건
나는
최승자의 시 '사랑하는 손' 의 한 구절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만을 느끼면서 런던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지겹고 절망적으로 내리는 런던의 비를 맞으며
내 인생을 가엾어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상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일상적이라는 말보다 일상적이고 생각할 틈도 없이 자꾸 일상적이다.
그런 일상을 견디기 힘들다는 느낌을 주는 무거운 마음으로 먼지처럼 떠다니다가
얹어놓은 라면 냄비의 물 끓는 소리를 듣고 배가 고팠다는 것을 간신히 기억해 내는 것처럼 지난번에 만난 웨스트엔드 씨의 말을 생각해 냈다.
'언제 한번 나를 찾아와. 우울할 때일수록 좋아.'
나는 웨스트엔드 씨를 찾아가기 위해 역시나 <내려서 적셔지는 가여운 안식>(역시나 최승자의 시)같은 비가 축축하게 내리던 날, 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이스트 엔드에서 웨스트 엔드까진 꽤 멀었다.
웨스트엔드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How r u? my friend."
"Not Much."
"그저 그렇다니, My Friend, 그게 뭐니. 자 내가 자네에게 뮤지컬이 뭔지 보여주겠어.
인생이 좀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맞이하는 거지. 그런데, 표는 끊었나?"
"아직."
"저런, 아직 표를 끊지 않으면 바보 돼. 이런 주말엔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
"뭐라구? 불러서 왔는데 표를 끊기 힘들다니?"
"이것 봐, 무언가를 하거나 느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게 필요해.
예를 들어 여자와 자더라도 호크는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벗고 기다리는 여자가 흔할 것 같나?"
"알았어, 알았어, 이상한 비유는 그만두고 표를 구해보지."
"좋아. 자네가 만약 아바Abba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맘마미아를 추천하겠네."
나는 웨스트엔드 씨의 추천을 받아들여 맘마미아 티켓을 구하기 위해 레스터스퀘어의 할인 매표소들과 극장을 왔다 갔다 했다. 최소한의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는 말이 실감났다.
어쨌거나, 나는 길고 긴 줄을 견뎌 표를 구했고 27파운드짜리 맨 꼭대기 싸구려 자리에 무거워진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비에 젖고 만 가죽재킷과 젖은 우산이 자꾸만 몸을 가렵게 했지만 견뎠다. 견디지 않고 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꿈처럼 뮤지컬이 시작되었다. 무대, 무대라는 느낌, 인간들이 밥만 먹고 똥만 싸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공간, 굉장히 많은 인간들이 넓은 극장에 꽉 차서 그것이 증명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간, 그것이 무대다. 바로 그 무대 위에서 '위대한 가상현실'이 시작되었다.
(알다시피 예술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다. 예술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플라톤이 예술은 거짓이고 눈속임이고 진리의 왜곡이라고 싸잡아 비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 거다.
그러나 나는 예술이 가상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예술은 없어져서는 안 될 위대한 존재이유를 가졌다.)
맘마미아는 I Have Dream이라는 잔잔한 곡으로 시작했다.
일단 공연이 시작되자 잔뜩 기분이 들떠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우울과 쓸쓸한 기분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나중에 웨스트엔드 씨를 다시 만나면 술 한 잔 사줘야겠다는 고마운 감정까지 들었다.
맘마미아(Mamma mia)라는 단어는 이태리어 어원으로 엄마야, 에그머니나, 정도의 의미로 쓰여진다고 한다.
아바의 음악을 전천후로 들으면서 자라온 세대는 아니지만 나는 아바를 사랑한다. 세상에
아바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바의 음악을 싫어하는 돌고래가 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맘마미아는 아바의 음악들을 사용해서 만든 뮤지컬 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것이고 1970년대 디스코 열풍의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감동의 도가니탕을, 그 이후에 태어나 디스코와 테스코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감동의 삼계탕을 1999년 4월 6일부터 쭈욱 선사하고 있는 대중음악의 멋진 킹왕짱 밴드다.
최근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꽤 많은 관람객을 모았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나는 맘마미아를 보기 전부터 맘마미아에 나온다는 곡들을 모조리 찾아 뮤지컬 상의 진행 순서대로 내 음악 재생 리스트에 편집해 놓고 아침저녁으로 들었다.
(낮에는 일했다-_-)
아무리 아바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 곡은 아바의 무엇, 이 노랜 무슨 가사, 하고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미리 귀를 교육시켜 두자는 것이었다.
사실 음악만 듣기에도 정말 좋았다.
아바, 라는 위대한 밴드의 위대한 디스코의 위대한 반짝이 옷의 압박은 서기 2175년, 지구를 떠나 명왕성까지 가는 우주여행 왕복선에서조차 선내 DJ가 선곡할 수 있는 강한 압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모르긴 해도 2175년에 디스코가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는 거잖아.)
다양한 연령대의 하우스메이트들은 며칠 째 아바로 도배되던 거실 스피커를 이해 해줬다. 그게 아바의 힘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바 음악이 이 뮤지컬의 에너지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 뮤지컬은 남녀노소 동서양 코쟁이 인디안 에스키모 엑스세대 기성세대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어필 할 수 밖에 없는 뮤지컬이겠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만으로도 좋은데 뮤지컬로 만든 이야기엔 플롯의 감동까지 도사리고 있었다.
어쨌든 완전 감동으로 뮤지컬에 매료되고 만 나는 정신줄을 놓고 맘마미아, 씨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들, 사람 울리기야?"
"내가 언제 울렸다구 그래?"
"아줌마들, 셋이서 Super Trouper 부를 때 입고 나온 반짝이 옷 때문에 울었단 말야."
"왜 그런 신나는 장면에서 울고 지 랄이야, 다 큰 녀석이."
"아니 왜 있잖아요, 아줌마들이 도나 아줌마 위로하느라고 거 뭐랄까 온갖 발광을 다 떠는장면 있잖아요, 그 시절의 ‘순수’로 돌아가 젊은 사람들 앞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이 너무나도 멋있게 Super Trouper를 불렀잖아요. 그게 얼마나 찡한지 알아요? 아니 멀쩡하게 생긴 아줌마들이... 왜 그래요."
맘마미아 아줌마는 내 말에 손바닥을 뒤집으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아줌마,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는 영화봤어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찡하게 그 뭐랄까 이젠 없는, 과거엔 아름다웠던, 그러나 이젠 없는, 그것! 그런 느낌 때문에 코끝을 자극받아가며 쳤던 그 기립박수하고 비슷한 느낌, 이었다구요."
"이봐, 총각, 내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봤을 리가 없잖아. 그건 아마도 한국 영화겠지. 그리고 날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아. 누님이라고 해. 아줌마가 뭐야. 내가 그렇게 늙어보여?"
"아 그렇다면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봤어요? 그 뭐랄까 그 쿠바의 다 늙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예전의 화려했던 영광을 재현하던 그 무대의, 심장이 잠깐 박동을 멈추던 호흡곤란의, 아름다움의, 절대적 예술의, (헉헉) 감동의, 인생의 깊이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질질 짠 사람이 얼마나 많았다구요. 그런 느낌과 정말 비슷했단 말이에요."
"음....."
맘마미아 아줌마는 지나간 과거가 공기속에 떠 있는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결국 맘마미아, 라는 뮤지컬이 나에게 건네 준 것은 잃어버린 사랑, 그것을 찾아가는 작업의 위대한 아름다움이었다. 이것은 당대에는 화려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빛 바래버린 것들을 무시하고 살고 있던 나에게 훌륭한 복기의 메시지를 안겼다.
시간이 흘렀어도 당대만큼의 빛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위대한 예술형태가 잊혀 가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가를 결코 과장되지 않게, 차분히 찔러 넣어 주시는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찡 하고 울려 여러 번 울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옛날에 이런 디스코 열풍이었던 시대가 있었어, 누구나 반짝이 옷을 입었지, 알기나 해?' 라는 어감이 아니라 '음. 우린 그랬어.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그래. 이건 우리 세대의 공식이었어. 누구나 인생이라는 암초에 걸려 화려했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말지만 그건 옳지 않아. 여전히 그렇게 살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인생에 있어서 어떤 중요했던 문화적 감동들을 잊고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라는 메시지를 찬찬히 보여주는 느낌이었다는 거다.
딸, 즉 현재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고
딸의 엄마 도나가 주인공이고 결국
결혼식도 도나의 결혼식- 과거에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결합되는- 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보면
지나간 아름다움의 회상에 그치지 않는 강한 연속성의 세심한 상징이 돋보인다.
게다가 그 스토오리 중간 중간에 배치된 아바 음악들의 향취는 그야말로 딱 적재적소들이었다. 선데이 타임즈(이 신문 아직도 나오나...못 본 것 같은데..-_-)의 어떤 기자가 쓴 기사엔 '노래를 장식의 수준에서 넘어서서 줄거리 속에 솜씨 있게 배치한 기술과 위트' 라고 평가한 부분이 있는데 너무나도 적절한 표현이다.
"아줌마, 나 그리고 마지막에 언니들 또 반짝이 옷 입고 Dancing Queen부를 때 또 울었잖아. 나중에 아저씨들까지 합세해서 반짝이 입고 같이 부르는데 아주 죽는 줄 알았어."
"넌 아까부터 왜 자꾸 흥겨운 장면에서 울고 자빠졌어? 다들 일어서서 춤추고 미친 듯이 그 분위기를 즐기는데 뭐가 슬프다는 거야?"
"뭐랄까, 어떤 선을 넘는 감동을 느끼면 우리민족은 눈물을 흘린단 말이죠. 그리고 같이 뮤지컬을 보던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들 일어서서 같이 즐기고, 그것을 현재로 받아들이며 기뻐하는 모습이 더더욱 감동적이었단 말이에요. 사실 엄마 생각도 나고, 우리 엄마도 이런 뮤지컬을 보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지금은 완전히 삶에 찌든 아줌마가 되고 말았지만 우리 엄마도 아바를 좋아했었단 말이죠. 만약 같이 보셨다면 희생만을 강요당했던 세대의 희생양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아줌마로 부활 할지도 모르는 감동의 순간이었단 말이에요."
"후훗, 알았어 알았어."
아줌마는 내 등을 두어 번 토닥거려 주었다.
뮤지컬이 끝난 뒤에도 나는 극장을 나가기 싫었다.
맘마미아를 보고 한 사흘 쯤 짙은 감동의 세레모니를 간직하며 멍하게 살았다. 지금도 아바의 음악들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다. 또다시 그 감동이 재현되려는 조짐이다.
나가서 맥주라도 대여섯 캔 사와야겠다.
나는 문장의 처음에 I have Dream으로 이 뮤지컬이 시작된다, 고 썼다.
이 뮤지컬을 본 뒤 나도 꿈이 생겼다.
한국의 7-8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산울림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팬으로서 산울림의 음악으로 된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늘 한 수 위라 발 빠른 누군가 이미 기획했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빨리 안 나오면 내가 한 번 감동적으로 써버릴 테다. 기대하시라!
휴우, 글이 너무 길군요.
죄송하니까. ABBA의 Super Trouper 가사를 올립니다. 죽입니다.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I was sick and tired
of everything
when I called you
last night from Glasgow
all I do is eat
and sleep and sing
wishing every show
was the last show
so imagine I was
glad to hear you’re coming
suddenly I feel all right
and it’s gonna be
so different when
I’m on the stage tonight
Tonight the
Super Trouper
lights are gonna find me
shining like the sun
smiling, having fun
feeling like a number one
tonight the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Facing twenty thousand
of your friends
how can anyone
be so lonely
part of a success
that never ends
still I’m thinking
about you only
there are moments when I
think I’m going crazy
but it’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will be
so different when
I’m on the stage tonight
Tonight the
Super Trouper
lights are gonna find me
shining like the sun
smiling, having fun
feeling like a number one
tonight the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So I’ll be there
when you arrive
the sight of you
will prove to me
I’m still alive
and when you take
me in your arms
and hold me tight
I know it’s gonna
mean so much tonight
Tonight the
Super Trouper
lights are gonna find me
shining like the sun
smiling, having fun
feeling like a number one
tonight the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2003년, 겨울, 런던,
맘마미아. 웨딩드레스를 입은 입 큰 여자가 남사스럽게 웃고 있는 포스터가 더블 데커 광고판이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옆 볼때기에 매달려 있건 말건
나는
최승자의 시 '사랑하는 손' 의 한 구절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만을 느끼면서 런던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지겹고 절망적으로 내리는 런던의 비를 맞으며
내 인생을 가엾어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상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일상적이라는 말보다 일상적이고 생각할 틈도 없이 자꾸 일상적이다.
그런 일상을 견디기 힘들다는 느낌을 주는 무거운 마음으로 먼지처럼 떠다니다가
얹어놓은 라면 냄비의 물 끓는 소리를 듣고 배가 고팠다는 것을 간신히 기억해 내는 것처럼 지난번에 만난 웨스트엔드 씨의 말을 생각해 냈다.
'언제 한번 나를 찾아와. 우울할 때일수록 좋아.'
나는 웨스트엔드 씨를 찾아가기 위해 역시나 <내려서 적셔지는 가여운 안식>(역시나 최승자의 시)같은 비가 축축하게 내리던 날, 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이스트 엔드에서 웨스트 엔드까진 꽤 멀었다.
웨스트엔드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How r u? my friend."
"Not Much."
"그저 그렇다니, My Friend, 그게 뭐니. 자 내가 자네에게 뮤지컬이 뭔지 보여주겠어.
인생이 좀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맞이하는 거지. 그런데, 표는 끊었나?"
"아직."
"저런, 아직 표를 끊지 않으면 바보 돼. 이런 주말엔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
"뭐라구? 불러서 왔는데 표를 끊기 힘들다니?"
"이것 봐, 무언가를 하거나 느끼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게 필요해.
예를 들어 여자와 자더라도 호크는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벗고 기다리는 여자가 흔할 것 같나?"
"알았어, 알았어, 이상한 비유는 그만두고 표를 구해보지."
"좋아. 자네가 만약 아바Abba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맘마미아를 추천하겠네."
나는 웨스트엔드 씨의 추천을 받아들여 맘마미아 티켓을 구하기 위해 레스터스퀘어의 할인 매표소들과 극장을 왔다 갔다 했다. 최소한의 노력 없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는 말이 실감났다.
어쨌거나, 나는 길고 긴 줄을 견뎌 표를 구했고 27파운드짜리 맨 꼭대기 싸구려 자리에 무거워진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비에 젖고 만 가죽재킷과 젖은 우산이 자꾸만 몸을 가렵게 했지만 견뎠다. 견디지 않고 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꿈처럼 뮤지컬이 시작되었다. 무대, 무대라는 느낌, 인간들이 밥만 먹고 똥만 싸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공간, 굉장히 많은 인간들이 넓은 극장에 꽉 차서 그것이 증명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간, 그것이 무대다. 바로 그 무대 위에서 '위대한 가상현실'이 시작되었다.
(알다시피 예술의 세계는 가상의 세계다. 예술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플라톤이 예술은 거짓이고 눈속임이고 진리의 왜곡이라고 싸잡아 비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 거다.
그러나 나는 예술이 가상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예술은 없어져서는 안 될 위대한 존재이유를 가졌다.)
맘마미아는 I Have Dream이라는 잔잔한 곡으로 시작했다.
일단 공연이 시작되자 잔뜩 기분이 들떠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우울과 쓸쓸한 기분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나중에 웨스트엔드 씨를 다시 만나면 술 한 잔 사줘야겠다는 고마운 감정까지 들었다.
맘마미아(Mamma mia)라는 단어는 이태리어 어원으로 엄마야, 에그머니나, 정도의 의미로 쓰여진다고 한다.
아바의 음악을 전천후로 들으면서 자라온 세대는 아니지만 나는 아바를 사랑한다. 세상에
아바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바의 음악을 싫어하는 돌고래가 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맘마미아는 아바의 음악들을 사용해서 만든 뮤지컬 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것이고 1970년대 디스코 열풍의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감동의 도가니탕을, 그 이후에 태어나 디스코와 테스코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감동의 삼계탕을 1999년 4월 6일부터 쭈욱 선사하고 있는 대중음악의 멋진 킹왕짱 밴드다.
최근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꽤 많은 관람객을 모았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나는 맘마미아를 보기 전부터 맘마미아에 나온다는 곡들을 모조리 찾아 뮤지컬 상의 진행 순서대로 내 음악 재생 리스트에 편집해 놓고 아침저녁으로 들었다.
(낮에는 일했다-_-)
아무리 아바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 곡은 아바의 무엇, 이 노랜 무슨 가사, 하고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미리 귀를 교육시켜 두자는 것이었다.
사실 음악만 듣기에도 정말 좋았다.
아바, 라는 위대한 밴드의 위대한 디스코의 위대한 반짝이 옷의 압박은 서기 2175년, 지구를 떠나 명왕성까지 가는 우주여행 왕복선에서조차 선내 DJ가 선곡할 수 있는 강한 압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모르긴 해도 2175년에 디스코가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는 거잖아.)
다양한 연령대의 하우스메이트들은 며칠 째 아바로 도배되던 거실 스피커를 이해 해줬다. 그게 아바의 힘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바 음악이 이 뮤지컬의 에너지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 뮤지컬은 남녀노소 동서양 코쟁이 인디안 에스키모 엑스세대 기성세대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어필 할 수 밖에 없는 뮤지컬이겠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만으로도 좋은데 뮤지컬로 만든 이야기엔 플롯의 감동까지 도사리고 있었다.
어쨌든 완전 감동으로 뮤지컬에 매료되고 만 나는 정신줄을 놓고 맘마미아, 씨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들, 사람 울리기야?"
"내가 언제 울렸다구 그래?"
"아줌마들, 셋이서 Super Trouper 부를 때 입고 나온 반짝이 옷 때문에 울었단 말야."
"왜 그런 신나는 장면에서 울고 지 랄이야, 다 큰 녀석이."
"아니 왜 있잖아요, 아줌마들이 도나 아줌마 위로하느라고 거 뭐랄까 온갖 발광을 다 떠는장면 있잖아요, 그 시절의 ‘순수’로 돌아가 젊은 사람들 앞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이 너무나도 멋있게 Super Trouper를 불렀잖아요. 그게 얼마나 찡한지 알아요? 아니 멀쩡하게 생긴 아줌마들이... 왜 그래요."
맘마미아 아줌마는 내 말에 손바닥을 뒤집으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아줌마,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는 영화봤어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찡하게 그 뭐랄까 이젠 없는, 과거엔 아름다웠던, 그러나 이젠 없는, 그것! 그런 느낌 때문에 코끝을 자극받아가며 쳤던 그 기립박수하고 비슷한 느낌, 이었다구요."
"이봐, 총각, 내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봤을 리가 없잖아. 그건 아마도 한국 영화겠지. 그리고 날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아. 누님이라고 해. 아줌마가 뭐야. 내가 그렇게 늙어보여?"
"아 그렇다면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봤어요? 그 뭐랄까 그 쿠바의 다 늙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예전의 화려했던 영광을 재현하던 그 무대의, 심장이 잠깐 박동을 멈추던 호흡곤란의, 아름다움의, 절대적 예술의, (헉헉) 감동의, 인생의 깊이의, 불꽃놀이를 보면서 질질 짠 사람이 얼마나 많았다구요. 그런 느낌과 정말 비슷했단 말이에요."
"음....."
맘마미아 아줌마는 지나간 과거가 공기속에 떠 있는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결국 맘마미아, 라는 뮤지컬이 나에게 건네 준 것은 잃어버린 사랑, 그것을 찾아가는 작업의 위대한 아름다움이었다. 이것은 당대에는 화려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빛 바래버린 것들을 무시하고 살고 있던 나에게 훌륭한 복기의 메시지를 안겼다.
시간이 흘렀어도 당대만큼의 빛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위대한 예술형태가 잊혀 가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가를 결코 과장되지 않게, 차분히 찔러 넣어 주시는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찡 하고 울려 여러 번 울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옛날에 이런 디스코 열풍이었던 시대가 있었어, 누구나 반짝이 옷을 입었지, 알기나 해?' 라는 어감이 아니라 '음. 우린 그랬어.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그래. 이건 우리 세대의 공식이었어. 누구나 인생이라는 암초에 걸려 화려했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말지만 그건 옳지 않아. 여전히 그렇게 살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인생에 있어서 어떤 중요했던 문화적 감동들을 잊고 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라는 메시지를 찬찬히 보여주는 느낌이었다는 거다.
딸, 즉 현재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고
딸의 엄마 도나가 주인공이고 결국
결혼식도 도나의 결혼식- 과거에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결합되는- 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보면
지나간 아름다움의 회상에 그치지 않는 강한 연속성의 세심한 상징이 돋보인다.
게다가 그 스토오리 중간 중간에 배치된 아바 음악들의 향취는 그야말로 딱 적재적소들이었다. 선데이 타임즈(이 신문 아직도 나오나...못 본 것 같은데..-_-)의 어떤 기자가 쓴 기사엔 '노래를 장식의 수준에서 넘어서서 줄거리 속에 솜씨 있게 배치한 기술과 위트' 라고 평가한 부분이 있는데 너무나도 적절한 표현이다.
"아줌마, 나 그리고 마지막에 언니들 또 반짝이 옷 입고 Dancing Queen부를 때 또 울었잖아. 나중에 아저씨들까지 합세해서 반짝이 입고 같이 부르는데 아주 죽는 줄 알았어."
"넌 아까부터 왜 자꾸 흥겨운 장면에서 울고 자빠졌어? 다들 일어서서 춤추고 미친 듯이 그 분위기를 즐기는데 뭐가 슬프다는 거야?"
"뭐랄까, 어떤 선을 넘는 감동을 느끼면 우리민족은 눈물을 흘린단 말이죠. 그리고 같이 뮤지컬을 보던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들 일어서서 같이 즐기고, 그것을 현재로 받아들이며 기뻐하는 모습이 더더욱 감동적이었단 말이에요. 사실 엄마 생각도 나고, 우리 엄마도 이런 뮤지컬을 보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지금은 완전히 삶에 찌든 아줌마가 되고 말았지만 우리 엄마도 아바를 좋아했었단 말이죠. 만약 같이 보셨다면 희생만을 강요당했던 세대의 희생양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아줌마로 부활 할지도 모르는 감동의 순간이었단 말이에요."
"후훗, 알았어 알았어."
아줌마는 내 등을 두어 번 토닥거려 주었다.
뮤지컬이 끝난 뒤에도 나는 극장을 나가기 싫었다.
맘마미아를 보고 한 사흘 쯤 짙은 감동의 세레모니를 간직하며 멍하게 살았다. 지금도 아바의 음악들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다. 또다시 그 감동이 재현되려는 조짐이다.
나가서 맥주라도 대여섯 캔 사와야겠다.
나는 문장의 처음에 I have Dream으로 이 뮤지컬이 시작된다, 고 썼다.
이 뮤지컬을 본 뒤 나도 꿈이 생겼다.
한국의 7-8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산울림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팬으로서 산울림의 음악으로 된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늘 한 수 위라 발 빠른 누군가 이미 기획했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빨리 안 나오면 내가 한 번 감동적으로 써버릴 테다. 기대하시라!
휴우, 글이 너무 길군요.
죄송하니까. ABBA의 Super Trouper 가사를 올립니다. 죽입니다.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I was sick and tired
of everything
when I called you
last night from Glasgow
all I do is eat
and sleep and sing
wishing every show
was the last show
so imagine I was
glad to hear you’re coming
suddenly I feel all right
and it’s gonna be
so different when
I’m on the stage tonight
Tonight the
Super Trouper
lights are gonna find me
shining like the sun
smiling, having fun
feeling like a number one
tonight the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Facing twenty thousand
of your friends
how can anyone
be so lonely
part of a success
that never ends
still I’m thinking
about you only
there are moments when I
think I’m going crazy
but it’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will be
so different when
I’m on the stage tonight
Tonight the
Super Trouper
lights are gonna find me
shining like the sun
smiling, having fun
feeling like a number one
tonight the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So I’ll be there
when you arrive
the sight of you
will prove to me
I’m still alive
and when you take
me in your arms
and hold me tight
I know it’s gonna
mean so much tonight
Tonight the
Super Trouper
lights are gonna find me
shining like the sun
smiling, having fun
feeling like a number one
tonight the
Super Trouper
beams are gonna blind me
but I won’t feel blue
like I always do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Yong Gam님의 댓글
Yong Gam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How do you sing at '’cause somewhere in the crowd there's you'? I tried but doesn't fit with the rhythm.. I've been singing fine up to this point;-)
15번진짜안와님의 댓글
15번진짜안와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조금 이상하긴 하고, 저도 잘 안되지만, Keep trying^^
콩콩님의 댓글
콩콩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이따금씩 게시판에 들어와 연재를 바라며 예전 글들을 읽어봅니다. 곧 한국 들어가면 책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