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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64) 첫 EPL 직관의 추억, 그리고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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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라시스터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7,418회 작성일 17-01-2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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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EPL 직관의 추억, 그리고 현재


나 홀로 영국 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되던 2010년 12월 - 한국에서 여동생과 남동생이 겨울 방학을 맞아 영국에 오기로 계획했다. 영국 생활 첫 1년이 가장 힘들었는데 한국을 떠난 지 단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국이 너무나 그립고 외롭고 가족도 친구들도 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동생들이 영국에 온다는 것. 그걸로 다이어리에 체크하며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이때까지 영국 생활하는데 적응하느라 축구는 보러 갈 생각도 못했고 동생들의 방문에 맞춰 여행도 축구 직관 계획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동생들의 방문 일정은 12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비행기 표도 예약하고 축구 경기는 세 경기 예매를 해 뒀다. 맨체스터 시티 대 에버튼(12월 20일), 버밍엄 시티 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2월 28일) 그리고 첼시 대 볼튼(12월 29일) 이렇게 예매해뒀다. 축구 직관에 맞춰 맨체스터, 버밍엄 그리고 런던 여행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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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동생들 오는 날을 표시해 둔 다이어리)

12월 18일. 드디어 한국에서 동생들이 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3일 전에 시험이 끝났겠다 이제 동생들이랑 즐기면 되겠단 생각으로 지하철을 타고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 눈이 좀 많이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잘 오고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가고 있었는데, 잘 가고 있다가 갑자기 다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튜브(런던 지하철)가 히트로 터미널까지 갈 수 않으니 버스를 갈아타거나 다른 방법으로 공항에 가야 한다고 했다. 역 밖으로 나와서 심지어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거기가 어딘지는 더더욱 모르는 상황이었다. 거의 울먹이며 역 직원에게 "동생들이 한국에서 오는데 오늘 꼭 공항에 가야 한다"라고 했더니 오늘 히드로에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 한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공항에 가면 안 된다고. 긴가민가하고 만약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내가 없어서 당황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혹시나 연락이 올까 해서 핸드폰만 확인하며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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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메가 버스를 타고 맨체스터에 갔다)


집에 돌아와서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동생들한테 연락이 왔다. "언니, 영국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우리 독일이야 ㅠ_ㅠ" 이건 무슨 소리인가...!!! 런던 공항에 착륙이 불가능해서 프랑크푸르트에 내려서 호텔에서 투숙 중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때 상황이 너무도 생생하다. 심지어 내 동생들은 영어를 잘 하지도 못 해서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해서 도착한 줄 알았다고... 내려서 둘러보고 영어를 읽으려고 했는데 읽히지가 않았고 승무원한테 물어봐서 겨우 이해했다는 거다. 다음 날 상황 봐서 다시 비행기 타고 영국으로 올 수 있을 거라고 하고 끊었다. 동생들 걱정도 너무 되지만, 맨시티와 에버튼 경기가 20일에 열리는데 19일에 출발하지 않으면 도저히 20일에 경기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다음 날 동생들에게 연락이 왔다. 이 날도 영국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그럼 티켓은 어떻게 되는 거며 여행 기간 중 이틀을 그냥 날리게 되었다 (물론 동생 둘이서 힘든 상황 속에 서로에게 의지하며 프랑크푸르트에서 나름 즐기며 추억을 쌓았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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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전 대신 아스톤 빌라와의 홈 경기 티켓으로 바꿔준 맨시티)


맨체스터 가는 교통 편이랑 티켓을 구매해 뒀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다음날 경기가 열리는데 취소도 안될 텐데 그대로 돈을 버릴 수많은 없었다. 용기를 내어 맨시티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이야 전화하는 게 뭐 어렵냐 할 수 있지만, 당시 나는 런던 생활 3개월도 채 되지 않았고, 생활은 둘째 치고 영국 발음에 적응이 하나도 안 된 상태였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야 했다. 맨체스터라 직원들도 맨체스터 억양을 가지고 있다. 그 말 즉슨 대화가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뭐라고 할지 준비했다. "한국에서 동생들이 와서 맨시티 에버튼 티켓을 샀는데 - 폭설로 제날짜에 도착을 못 해서 경기를 보러 가지 못한다. 이 나라는 왜 폭설이 내렸다고 해서 모든 시스템이 멈춘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애 첫 직관인데 동생들이 언제 올지 모르겠다 (거의 울부짖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니? 기간 동안 열리는 홈경기로 티켓 바꿔주면 정말 고맙겠다"라며 준비된 멘트를 쏟아 냈다. 영국인들도 알고 있다. 이 나라가 대비가 안되어있다는 것을, 60년대 이후 몇 십 년 만에 내린 폭설이었고 영국 곳곳에 도로가 마비가 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등의 뉴스들이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맨시티 직원은 "그럼 28일에 아스톤 빌라와 홈경기가 있는데 이때는 경기 보러 올 수 있겠니? 에버튼 경기에서 빌라와의 홈경기로 티켓을 변경해줄게"하는 게 아닌가! "OF COURSE YES!". 힘겹게 티켓을 변경하고 (왕복 버스 티켓은 안 바꿔줬다. 매정하다 ㅠ_ㅠ), 동생들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하루 더 있다 20일에 영국에 도착. 공항에서 도착한 거 보고 붙잡고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12월 28일 경기 당일. 맨체스터로 가는 날이다. 오후 3시 경기였기에 아침 8시에 런던에서 메가 버스를 타고 맨체스터로 갔다. 기차는 비싸서 사실 살 엄두도 내지 못했고, 5시간에 가까운 버스를 타고 몸이 고생하더라도 차라리 돈을 아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싼 기차 티켓도 미리 사면 살 수 있었는데 이걸 그땐 몰랐다. 5시간이 걸리면 어떠리, 맨시티 경기만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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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근처에는 말을 탄 경찰들을 볼 수 있다)

동생들이 온 덕분에 나도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함께했다. 동생들한테 가이드를 해줘야 하는데 너네나 나나 새로운 건 마찬가지라며 함께 이겨나가자고 - 5시간을 달려 맨체스터에 도착. 메가 버스 터미널에서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역에 내렸다. 맨체스터에는 트램이라는 것이 다니는구나. 트램에서 내려서 경기장까지 도보로 20-30분은 걸린 것 같다 (지금은 경기장 바로 앞에 트램이 생겨서 걸어갈 필요 없다). 처음 가는 곳이라 더 헤매기도 했다. 맨체스터도 처음이지만 경찰들이 말 타고 다니는 건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만 봤지 직접 본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우면서도 멋지단 생각이. 경기장이 근처에 있음을 알리는 경찰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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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에티하드 스타디움이지만 이전에는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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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맨시티의 경기장이 에티하드의 네이밍 라이츠로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바뀌었지만 2010년에는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이었다. '스포트 시티'라는 스포츠 경기장 단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2002 코먼웰스 대회가 열렸고, 레거시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맨시티의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축구장을 비롯해 사이클링, 육상, 테니스, 스쿼시 등 다른 경기장도 함께 있다. 지금도 맨시티 경기장에 가면 주위에 코먼웰스 경기장의 개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메가 이벤트의 장기적 효과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영국 겨울이라 흐린 건 당연하지만 날씨만 좋았다면 하늘색이 참 예쁘게 보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경기장 도착을 반기는 사인. 오후 3시 경기인데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해서 3시 반이면 어두워지는 영국의 겨울. 날씨고 뭐고 빨리 경기장에 들어가자며 우리의 첫 번째 직관 경기를 위해 서둘러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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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경기장 안에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우리나라는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볼 수 있어서 경기장 안에 술을 사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다 마시고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입장하는데 버리라고 한다. 전반전 끝나기 10분 전부터 아저씨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맥주나 배를 채우려면 먼저 나가서 줄을 서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기장에서 하는 베팅 문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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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에 맨시티와 에버튼 경기는 보려고 했지만 이 날 패해서 아스톤 빌라를 상대로 이겨야지만 리그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경기장에 들어가서 느낀 전율은 그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에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요즘 흔히 말하는 '심장 폭행'을 당한 듯했다. TV 브라운관으로만 보던 걸 내가 직접 보다니 감동 그 자체였다. 맥주 마시느라 안 들어온 건지 경기 시작 시에는 경기장이 꽉 차지 않았는데 시작 후 이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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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해트트릭을 기록한 발로텔리)

이날의 경기 결과는 4-0 맨시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마리오 발로텔리의 해트트릭이 터졌고 손쉽게 빌라를 상대로 승리한 맨시티. 이것이 EPL 1위의 모습이구나, 누구의 승리가 중요하진 않았다. 그저 이 순간에 내가 있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에 그리고 비록 고생해서 영국에 들어왔지만 동생들과 함께 경기를 보고 같은 추억을 공부할 수 있음에 한없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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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직관은 끝이 났고, 경기장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버밍엄으로 향했다. 위에도 적었지만 두 번째 직관 경기가 버밍엄 시티대 맨유 경기였는데, 맨시티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 날과 같았고 시간만 달라서 경기 끝나기 15분 전에 나와서 버스를 타고 버밍엄으로 가야 했다. 첫 경기를 직관한 날 우린 하루에 다른 도시에서 EPL 두 경기를 본 것이다.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두 팀과 버밍엄을 연고로 하는 두 팀 간의 맞대결을 말이다. 이래서 더욱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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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에서 버밍엄으로 넘어가 버밍엄 시티 대 맨유 경기를 봤다)

지금 동생들과 함께 영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때는 여행으로 시작했고, 다시는 영국 축구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에겐 정말 많은 변화들이 생겼고 목표를 이루기도 한 편으로 많은 것에 실패하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내일 우리 셋이 처음으로 함께 직관했던 그곳. 맨시티의 홈으로 토트넘과의 경기를 보기 위해 방문한다. 6년 전과 지금의 우리가 다르듯이 내일 경기장에서 느낌도 다를 것이다. 내일은 어떤 추억을 쌓게 되고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지 감회가 새롭다. 우리의 영국 생활의 마음가짐과 초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영국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오게 될 것 같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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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국 5년 살면서 EPL 직관 한 번 못하고 왔네요.
하긴 그 때는 한국인 선수 한 명 없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관심이 떨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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