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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견문 근대를 발명한 영국인들 – 시간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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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윰윰쾅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285회 작성일 21-06-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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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름을 맞아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를 찾았다. 본초 자오선의 기준인 경도 0도선이 있는그리니치만큼 근대 세계를 만들어낸 영국의 위상을 잘 설명해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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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는 그리니치의 본초 자오선. 여기서부터 동쪽은 동경(E), 서쪽은 서경(W).



근대와 전근대, 서로 상이했던 시간 관념


태초부터 지구는 돌고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왔지만, 근대가 오기 전까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의 시간 관념은 현대인들의 그것과는 다소 달랐다. 제사를 지내고, 농사를 짓고, 군사시설을 지키기 위해서, 다양한 종교적, 경제적,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 권력자들은 시계 제작에 공을 들여왔지만,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장삼이사 농군 대부분은 새벽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 해가 지면 하루를 마치는 일상을 살아갔다. 분단위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시간의 속박에서,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더해 많은 문명권에서 시간은 한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인들에게 친숙한 육십갑자에 따른 연도 계산은 물론이거니와 종말에 대한 예언으로 유명한 마야력 역시 52년마다 시간이 순환하는 역법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 감각은 사람의 생애주기를 측정하거나 계절의 변환에 따라 농사를 짓는 데에는 유리할 수는 있었겠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에 따라 인류의 문명과 기술이 발전해간다는 현대인들의 시간 감각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돌고 도는 시간 속의 근대 이전 문명권에서, 인간 문명이란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가는 것 이라기 보다는 흥망과 성쇄의 반복이었다.

 

근대의 시간을 발명한 영국인들


돌고 도는 전근대적 시간의 감각을 깨고 나온 것은 중세 이후의 유럽인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영국인들은 그러한 대열의 가장 앞에 있었다. 작은 배에 의지해 대양을 오가며 세계를 하나로 묶고 교통망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하나로 통일된 시간의 도입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었다. 중국을 하나로 묶은 진시황이 가장 먼저 실시한 정책이 전국의 도량형을 통일한 것이듯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키던 영국인들(특히 그 중에서도 영국의 상인들)은 전세계를 하나의 시간 체계로 엮어낼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시간을 통일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결실은 2세기가 지난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그리니치 천문대가 본초자오선의 기준이 되면서 맺어진다. 18세기 영국 전역을 누비던 코치(Coach: 마차)들은 각 지역마다 서로 각자 태양의 위치를 기준삼아 시간을 정하는 바람에 그 운영시간을 맞추는데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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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야 달력(위)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를 비롯한 수많은 문명권에서,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윤회하는 것이었다. 

정밀한 역법을 발전시킨 마야인들 역시 일정한 주기를 갖고 톱니바퀴처럼 돌고 도는 시간 감각을 갖고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하지만 자연히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시간마저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발명되어진 것이다. 근대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백년간 이어진 영국인들의 노력 끝에 현대 한국인들은 GMT+9의 시간대에 살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전적으로 평화롭거나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진시황의 폭정 하에 중국의 다양한 문자와 도량형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전 세계 여러 문명권에 존재하던 각자 다른 시간대와 역법은 GMT 기준에 맞추어 사라져갔다. 그리고 발전한 기술과 근대 문명은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도 하지만 때때로는 개인의 삶을 옳아 매고 구속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정해준 스케쥴에 맞추어 살아가야만 하는,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울려대는 핸드폰 알람소리를 들으며 영국인들이 만들어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편리와 비애를 동시에 느낀다.


(사진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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