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설날 같은 영국의 크리스마스[폴 카버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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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경삼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8.68)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24-12-25 07:02본문
크리스마스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휴일일 텐데 즐기는 방식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20년간 한국 생활에 적응한 나도 향수병이 생기는 날이 이 크리스마스다.
영국에서 핼러윈은 그렇게 중요한 날이 아니지만 날짜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 직전이라 이때부터 상점들이 각종 이벤트로 들뜨기 시작한다. 11월 5일은 ‘가이 포크스의 밤(Guy Fawkes Night)’이다. 이날은 불꽃놀이나 모닥불을 피우는 등의 행사가 벌어진다. 다음 날인 11월 6일부터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그때부터는 여러 상점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크리스마스캐럴을 틀거나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상품과 음식을 판매한다. 축구 클럽들도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상품을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한다.
점점 고조되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12월 1일에 더 탄력을 받는데 그때부터 어린이들이 25개의 작은 문이 달린 어드벤트 달력을 하루하루 뜯으면서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이 달력 문을 뜯으면 이파리 끝이 뾰족한 홀리 리프 문양이나 루돌프 사슴 등의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초콜릿이 달려 있거나 치즈, 화장품, 심지어는 진, 위스키, 와인이 달린 어른용 어드벤트 달력도 있다.
12월 초부터 라디오 방송이 크리스마스 음악을 본격적으로 틀기 시작한다. 아마도 머라이어 케리 혹은 조지 마이클의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는 데 익숙한 한국인들은 영국 크리스마스 음악이 꽤 생소할 것 같다. 영국에선 슬래이드의 ‘Merry Christmas Everybody’, 위저드의 ‘I Wish it could Be Christmas Everyday’ 등이 1970, 80년대 등장해 지금도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1번 곡이다. TV도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을 틀기 시작하고, 방송사 로고 음악이나 광고 모두 크리스마스 테마로 바뀐다.
12월 초 각 도시는 지역 유명인을 초대해 도시의 크리스마스 조명을 켜는 이벤트를 연다. 극장에서는 팬터마임을 공연하고 회사와 동아리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다.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를 초대해 학생들이 준비한 연극과 콘서트를 개최한다. 학교는 학기 말 직전 하루를 잡아 크리스마스 식사를 선보인다. 많은 사람이 시크릿 산타가 되어 선물 한 개를 준비하고 임의로 뽑힌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 한 사람 선물만 준비하면 되니 부담이 적고 소외되는 이 없이 골고루 크리스마스 정을 나눌 수 있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나눈다. 영국에는 로켓 배송이 없는 관계로 우체국은 크리스마스 전 언제까지 물건을 배송할 수 있는지 마지막 날짜를 공지한다. 어린이들은 산타에게 선물을 적은 편지를 쓴다. 이 시기 많은 가정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기 시작하는데, 보통은 플라스틱 나무보다 진짜 소나무를 선호하고 꼬마전구, 반짝이, 초콜릿 등 비싸지 않은 물건들로 장식한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아이들은 자러 가기 전 루돌프 사슴이 먹을 당근과 산타할아버지가 먹을 민스파이, 우유 또는 위스키를 준비해 놓는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밤사이 이 음식들을 먹으면서 선물을 포장하고 그걸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은 다음 잠든다.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설날, 추석같이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모이는 명절이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 크리스마스 스타킹에 있는 작은 선물을 뜯기 시작하고, 가족들도 일어나 나무 아래 놓여 있는 여러 개의 선물을 열어 본다. 선물 개봉이 끝나면 대개는 점심을 일찍부터 먹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전통 메뉴는 구운 칠면조, 구운 감자, 스터핑, 소시지베이컨말이, 방울양배추 등에 고기 소스를 부어 먹는 식이다. 디저트로는 크리스마스 푸딩, 크리스마스 케이크, 민스파이 등을 먹는데 배가 터질 때까지 식사한 뒤 왕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들으면서 꾸벅꾸벅 졸거나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영국에서는 26일도 공휴일이다. 이때 많은 사람이 쇼핑몰로 가서 박싱데이 세일 상품을 주워 담거나 친척을 방문한다.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도 한다. 이후에도 남은 크리스마스 음식과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을 즐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교환하며 크리스마스가 이어진다. 1월 6일이 돼서야 크리스마스 시즌이 완전히 끝난다. 이후에도 트리를 해체하지 않으면 나쁜 운이 따른다고도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영국이 그리워진다. 독자 여러분이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하셨든, 이번 크리스마스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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