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살 내셔널 갤러리에 새롭게 걸린 ‘신상’ 작품들 [슬기로운 미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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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미술여행 - 23] 런던 테이트모던 & 내셔널갤러리
정말 오랜만에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런던은 미술인들에게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축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이라는 두 런던 대표 미술관이 하루 차이로 연이어 생일 파티를 열고 있어서입니다. 지난 2주일 동안 벌어진 런던의 이벤트를 소개해봅니다.
두 곳에 앞서 J.M.W.터너의 250주년 전시를 4월 23일부터 시작한 테이트 브리튼도 다녀왔지만 잠시 미뤄두겠습니다. 짧은 파리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런던의 미술관들을 한 번에 둘러보는 감흥은 남달랐습니다.

![직접 집 속으로 들어가 체험할 수 있는 패브릭 하우스 작품 [Nest/s], 2024 ©Do Ho Suh](https://pimg.mk.co.kr/news/cms/202505/24/news-p.v1.20250520.9938afc9f5d0495a97cfe55b7baa9cc2_P1.png)
4월 29일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테이트 모던으로 향했습니다. 서도호의 서베이 전시 <Walk the House>(10월 19일까지)의 프레스 뷰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날 작가가 참석하지 않는 프레스 뷰의 진행 방식이 낯설기도 했고, 취재진이 100명이 넘는 전시도 런던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싶어 저녁 6시30분에 열린 오프닝 행사에 다시 참석했습니다.
테이트 모던 블라바트닉 빌딩 2층은 리움의 블랙박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나, 테이트 모던에서는 충분히 큰 메인 공간입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세계 미술계가 일제히 찬사를 보낸 마이크 켈리의 회고전이 열렸던 그 공간이었죠. 생존 작가의 개인전이 꾸준히 열고 있어, 이들이 써내려가는 21세기 미술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곳처럼 보입니다.
이미래의 터빈홀 전시는 3월 말 막을 내렸습니다. 1달여만에 바톤 터치를 했고 한국 작가가 다시 한 번 이 곳의 주인공이 된 셈입니다. 5월 1일 개막후 첫 주말부터 티켓은 매진되고 있습니다. 에딘버러에서도 느꼈지만 서도호를 향한 영국인의 사랑은 진심입니다. 아마도 영국의 빅토리아 미로가 키운 ‘런던의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영국 문화도 영향이 있어 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작년 5월 평면 위주 전시였던 에딘버러 국립미술관, 드로잉과 개념미술, 건축 모형 등을 중점적으로 보여준 8월 아트선재센터 전시가 동시에 열리며 보여준 신선함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디어의 발현 과정을 엿보게하고(에딘버러), 패브릭 하우스(Fabric House)를 포기하며(서울) 각자의 방식으로 파격적이었던 두 전시에 비해 파격적인 시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전시가 보여준 작품을 고루 가져와 보여주는 전시에 가까웠죠. 세 전시를 모두 본 입장에서는 작가의 ‘정반합’적인 기획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Rubbing/Loving Project: Seoul Home], 2013-2022 ©Do Ho Suh](https://pimg.mk.co.kr/news/cms/202505/24/news-p.v1.20250520.9b0fcb09736943afa4b3daf25a052054_P1.png)
이번 전시의 시작은 종이의 집입니다. 작가의 지난 10여년을 대표하는 작업은 <Rubbing/Loving Project>일 겁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는 2012년 서울의 고향집에 종이를 붙이고 파스텔로 문질러 탁본을 했습니다. 종이는 연약하고 손상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탁본을 9개월이나 집과 함께 하도록 했습니다. 풍화를 거쳐 자연의 흔적이 남은 작품이 탄생한겁니다.
디아스포라 인생의 출발점이었던 부친 서세옥 화백이 지은 19세기 전통 한옥은 그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공간이자, 평생 달팽이처럼 지고 다니는 집입니다. 30여년 자신의 예술의 시작점을 명확히 보여준 뒤 그는 광주 극장, 뉴욕집 등을 기억하기 위한 탁본 작업을 펼쳐보인 겁니다.
다만 서베이 전시의 장점과 단점은 모두 명확해 보였습니다. 서도호를 처음 보는 관람객들에게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친절하고, 즐거우며, 아름다운 전시로 기억될 겁니다. 하지만 새롭고 도전적인 미술을 선호하는 런던의 현대미술관을 찾는 이들의 까다로운 안목을 만족시키기에는 쉽지 않겠죠. 서베이 전시의 숙명입니다.
최근 양혜규와 서도호가 모두 서베이 전시를 열었고, 가디언의 신랄한 비판을 받은 것은 아마도 그런 영향이 클 겁니다. 최근 한국의 큐레이터와 서베이 전시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장기불황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아닐까”라는 자조적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의 ‘가성비’ 측면에서 스타 작가의 서베이 전시는 안전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긴 어려울테니까요.
![[Perfect Home: London, Horsham, New York, Berlin, Providence, Seoul], 2024 ©Do Ho Suh](https://pimg.mk.co.kr/news/cms/202505/24/news-p.v1.20250520.43fda4c1d71e4c7090762a16297d0878_P1.png)
이번 전시에서도 <Nest/s>(2024)가 기존의 패브릭 하우스의 확장버전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완전한 신작은 런던 자택을 반투명 패브릭 하우스로 만들고 스위치, 콘센트, 조명 등을 다닥다닥 새겨 놓은 <Perfect Home: London, Horsham, New York, Berlin, Providence, Seoul> (2024)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가 보는 ‘체험’이 이번 전시만의 특징이었죠. 거대한 전시 공간 속에 몰입형 전시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2025년에 잘 어울리는 무척 트렌디한 선택입니다. 오늘날의 미술 전시는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슈퍼스타가 된 2012년 리움미술관 전시 이후로 많은 이들은 서도호의 전시에서 더 예쁜 패브릭 하우스를 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로빈후드 가든이라는 공공주택을 통째로 잘라서 베니스에 설치했고, 이번 전시에서도 로빈후드 가든과 대구 동인아파트의 철거전 모습을 영상으로 상영했습니다. 작가는 인형의 집처럼 예쁜 설치 작업을 지속하기보다는 이주민의 삶, 공동체의 삶을 기록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울-런던-뉴욕의 가운데인 북극에 완벽한 집을 건축하는 프로젝트는 과학자들과 현지 주민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종이 신문까지 만들어 배포되며 진행 중이었습니다. 건축가 같던 작가가 과학자, 다큐멘터리 작가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조만간 쇄빙선을 타고 여행이라도 떠나신다면 탐험가라는 직업이 하나 더 추가될지도 모르겠네요.
![[Perfect Home]을 위한 드로잉과 의상이 전시되고 있다. ©Do Ho Suh](https://pimg.mk.co.kr/news/cms/202505/24/news-p.v1.20250520.c2eca995aeaa406ca4ac59e7ac6c11f4_P1.jpg)
![루이스 부르주아 [Maman]이 설치된 터빈홀 ©김슬기](https://pimg.mk.co.kr/news/cms/202505/24/news-p.v1.20250520.1001f05fb99b4fa9b30f49a8d2377ea9_P1.png)
5월 11일로 테이트 모던은 25주년을 맞았습니다. 테이트 모던은 탄생부터 특별한 미술관이었습니다. 원래 국립 미술관이라는 이름 아래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는 한 몸이었습니다. 1889년, 설탕 정제업자로 부를 쌓은 사업가 헨리 테이트(Henry Tate)가 19세기 영국 미술 컬렉션을 영국에 기증하고 최초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를 위한 자금을 제공하면서, 테이트라는 새로운 미술관이 탄생할 수 있었죠.
템스강변 밀뱅크에 건립된 테이트 브리튼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길버트 스콧 경이 건축해 20여년간 운행된 뒤 폐쇄된 뱅크사이드 발전소가 미술관으로 변신할 기회를 얻습니다. 1994년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계획이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마침내 2000년 5월 11일 현대 미술을 품는 거대한 미술관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엽니다. 첫 터빈홀 전시의 주인공이 된 루이스 부르주아를 비롯해 아니쉬 카푸어, 올라퍼 엘리아슨 등의 센세이셔널한 전시는 21세기 최고의 전시로 매번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25년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으며 런던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된 이 곳의 생일 파티도 남달랐습니다. 생일 주간을 맞아 미술관의 거대한 터빈홀은 클럽이 됐습니다. 9~11일 10시30분까지 야간 개장을 하며 전시를 이어가고, 터빈홀에서는 음식과 술을 팔고 음악을 틀었습니다.

야간 개장을 보려고 저는 2주일만에 다시 테이트 모던을 찾았습니다. 25주년 기념 전시도 새롭게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전시 중인 작품에 작은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숨겨 놓았습니다. ‘25점의 미술관의 역사를 대표하는 하이라이트’를 선정해 보물찾기하듯 만나보며 스스로 지도를 그려보는 전시였죠.
2000년 미술관의 개관을 함께 했던 전설적인 작품 루이스 부르주아의 <Maman>이 터빈홀로 돌아왔습니다. 대표적인 포토 스팟이 되어 인기를 누리는 중입니다. <하이라이트 25>의 면면이 정말 화려합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이면화>, 마크 로스코의 시그램 벽화, 조안 미첼의 <Iva> 등이 포함됐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도로시아 태닝의 <Eine Kleine Nachtmusik>입니다.
놀랍게도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가 선정됐습니다. 테이트 모던에서 처음 공개하는 신작이 쟁쟁한 거장들과 함께하게 된겁니다. 반갑고도 신기한 만남이었습니다. 불친절할 수 있는 동시대 미술들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25점이 그리는 지도는 21세기 미술사를 안내하는 친절한 가이드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구], 2022 ©김슬기](https://pimg.mk.co.kr/news/cms/202505/24/news-p.v1.20250520.8e20ce3ed9e248e19865eac52e259d46_P1.png)

![리처드 롱 [Mud Sun], 2024 ©김슬기](https://pimg.mk.co.kr/news/cms/202505/24/news-p.v1.20250520.46e2b511279848e185b78b7941443fe9_P1.png)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미술관 중 하나입니다. 1824년 의회에 의해 설립되었죠. 물론 규모나 화려함에서 이 곳을 능가하는 곳은 많습니다. 하지만 13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유럽의 회화 컬렉션을 가장 다채롭고 조화롭게 소장한 미술관으로는 이 곳을 능가할 곳이 없습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벨리니, 세잔, 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네, 라파엘로, 렘브란트, 르누아르, 루벤스, 티치아노, 터너, 반 다이크, 반 고흐, 벨라스케스의 작품 등 1000여점의 그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셔널갤러리가 200주년을 기념하면서 작년부터 미술관의 기둥을 비롯해 곳곳에는 ‘NG200’이라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1년에 걸쳐 생일 파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보면서 “뭘 이렇게까지 생일에 진심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대표작 12점을 영국 전역에서 순회전시하고, 반 고흐와 시에나 특별전을 열었죠. 1년에 걸친 이벤트의 방점은 201주년이 된 5월 10일 찍혔습니다.
201살 생일에 맞춰 내셔널 갤러리가 2년 간의 리모델링을 마친 세인즈버리 윙(Sainsbury Wing)이 재개장을 한 겁니다. 건축가 애너벨 셀도르프(Annabelle Selldorf)의 설계로 공간은 더욱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게 됐습니다. 공개 첫 날 입장이 시작된 10시에 맞춰 줄을 서서 함께 들어갔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고 TV 리포터가 관람객들의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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