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과일? 바닐라 초콜릿? 위스키, 왜 이런 맛 날까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 요리/맛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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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과일? 바닐라 초콜릿? 위스키, 왜 이런 맛 날까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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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중경삼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238.19) 댓글 0건 조회 458회 작성일 23-11-2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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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라프로익 한 병을 선물했습니다. 이 술이 무슨 술인지 기억나시나요? 제가 위스키디아 연재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인 1화에서 다뤘던 그 술입니다. 드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번 빠지면 두 번 다시 헤어나올 수 없는 맛이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맛이기도 하지요.

수많은 위스키 중 찰스 3세가 윤 대통령에게 라프로익을 선물한 이유는 뭘까요? 1994년 6월 찰스 3세가 직접 조종했던 경비행기가 아일러섬에 불시착한 적이 있습니다. 아일러섬의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도랑으로 미끄러진 것이지요.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당시 사고로 발이 묶였던 왕세자는 인근 증류소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 증류소가 바로 라프로익 증류소였습니다.

아일러 특유의 풍미에 반한 찰스 황태자는 라프로익 증류소에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수여하게 됩니다. 로열 워런트는 영국 왕실에 5년 이상 납품한 업체에만 수여하는 ‘품질 보증서’와 같습니다. 아일러섬에서 유일하게 라프로익 제품에만 영국 왕실 문양이 그려져 있는 이유입니다.

찰스 3세가 영국 국왕이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에 위치한 라프로익 증류소에서 오크통에 사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날 부인 카밀라는 라프로익 40년 숙성 제품에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laphroaigcollector
찰스 3세가 영국 국왕이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에 위치한 라프로익 증류소에서 오크통에 사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날 부인 카밀라는 라프로익 40년 숙성 제품에 사인을 했다고 합니다. /laphroaigcollector

이러한 인연은 2008년에도 이어져, 찰스 3세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부인 커밀라와 함께 증류소를 다시 찾게 됩니다. 이날 찰스와 커밀라는 각각 40년 숙성된 라프로익과 오크통에 사인을 남기게 되는데, 윤 대통령이 받은 선물이 바로 이 오크통에서 병입된 한정판 제품인 것입니다. 찰스 3세가 가장 사랑하는 증류소 제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의미가 깊은 셈입니다.

라프로익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위스키디아 1화를 보시면 됩니다. 링크 남겨드립니다.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나 위스키 좋아하네?]


그럼 본격적으로 오늘자 뉴스레터 시작하겠습니다.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로 제작된 오크통 내부를 차링(Charring: 새 오크통 내부를 태우는 것) 하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로 제작된 오크통 내부를 차링(Charring: 새 오크통 내부를 태우는 것) 하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끈적끈적하게 조린 열대과일, 바닐라 크림과 꿀에 절인 서양배, 고소한 견과류와 복숭아가 박힌 초코케이크 맛. 최근 디아지오(Diageo)가 출시한 신생 증류소의 싱글몰트 ‘로즈아일(Roseisle) 12년’의 테이스팅 노트입니다. 이제 막 위스키를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대체 어디서 과일 맛이 나고, 바닐라 초콜릿은 또 무슨 말인지 도통 감이 안 올 것입니다.

위스키의 대략적인 제조 과정은 대동소이합니다. 발효된 곡물을 통해 얻은 ‘스피릿(spirit: 증류주)’을 오크통에 넣어 숙성시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형화된 제조 방식과는 다르게 맛 차이는 증류소별로 천차만별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위스키 맛의 70%를 좌우하는 오크통

위스키의 맛을 결정짓는 요인들은 수없이 다양합니다. 원료, 발효 시간, 증류 방식, 오크통의 종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오크통입니다. 오크통이 위스키 맛의 70% 이상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스카치위스키는 규정상,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최소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원액이 길게는 30년 이상 숙성되기 때문에, 오크통의 영향력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물도 오크통에 며칠간 담가 놓으면 나무 맛으로 변합니다. 한날한시에 숙성한 스피릿은 오크통의 종류와 크기, 숙성 기간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낳게 됩니다.

스코틀랜드 증류소들은 숙성 과정에서, 새 오크통을 기피합니다. 자칫 나무 맛이 너무 강하거나, 사카린(saccharin)등의 인공 감미료 맛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로 다른 술을 숙성할 때 사용했던 오크통을 활용합니다. 즉, 전에 담겨 있던 내용물에 따라 위스키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겁니다. 예컨대 500리터 셰리 와인을 담고 있던 오크통에 있는 원액이 최대 10리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개성 강한 스피릿도 그 오크통에서 숙성되면 자연스레 셰리 맛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수년간 고추장만 담갔던 옹기에 간장을 넣었다고 갑자기 씨간장이 되지 않은 것처럼요.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한 쿠퍼리지(Cooperage: 오크통 만드는 곳)를 드론을 촬영한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한 쿠퍼리지(Cooperage: 오크통 만드는 곳)를 드론을 촬영한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셰리와 버번 오크통

위스키 오크통 시장의 90%는 셰리와 버번 오크통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셰리 오크통은 주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자라는 유러피언 오크로 제작되고, 버번 오크통은 미국의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 품종을 사용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아메리칸 화이트 오크는 부드럽고 달콤한 바닐라와 열대과일, 캐러멜 노트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유러피언 오크는 말린 과일과 계피, 감귤류를 포함해 매콤한 맛이 특징입니다. 목재의 종류가 위스키 맛으로 이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최근엔 테킬라나 럼, 코냑 등을 숙성한 오크통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버번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버번은 스카치위스키처럼 반드시 지켜야 할 조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버번은 숙성 시, 내부를 그을린 새 오크통을 사용해야 하고, 전체 원료의 옥수수 함량이 51%를 넘어야 합니다. 버번은 최소 숙성 기간이라는 원칙이 없어서 스피릿을 오크통에 담갔다 빼기만 해도 이를 버번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번 사용한 오크통은 절대 재활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쓰임을 다한 오크통은 폐기해야 합니다. 늘 오크통에 목말라 있는 위스키 증류소들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겠죠. 세계 각국 위스키 증류소들은 미국에서 폐기되는 버번 오크통을 몽땅 헐값에 들여와 위스키를 숙성합니다.

역사적으로 버번 오크통은 늘 인기가 좋았습니다. 스카치위스키를 숙성하는데 이처럼 가성비 좋은 제품이 없었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한번 쓰고 버리는 오크통은 새것처럼 튼튼해서 고쳐 쓸 일도 없습니다. 게다가 버번이 가진 특유의 달콤함과 스피릿이 만나, 열대과일 맛의 화사한 위스키까지 만들수 있습니다. 값비싼 셰리 오크통이 점점 귀해지는 상황에서, 버번 오크통은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오크통의 신선도

스카치 증류소에서 오크통을 한번 쓰고 폐기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버번 오크통의 개당 가격은 100만원입니다. 셰리 오크통의 경우 2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오크통은 위스키 생산 비용의 대략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오크통의 재활용은 필연적입니다. 여건이 이렇다 보니, 경제 개념이 투철한 위스키 증류소들은 오크통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재사용합니다.

로즈아일 12년 위스키 라벨에 퍼스트 필(First Fill) & 리필 캐스크(Re Fill) 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디아지오
로즈아일 12년 위스키 라벨에 퍼스트 필(First Fill) & 리필 캐스크(Re Fill) 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디아지오

위스키 라벨을 보면 ‘퍼스트 필(First Fill)’이라고 적힌 문구가 있습니다. 이는 셰리나 버번 등을 사용한 오크통에 처음으로 위스키를 넣어 숙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스피릿이 오크통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증류소들도 이를 자랑스럽게 여겨 라벨에 표기해주는 편입니다. ‘세컨드 필은(2nd Fill)’은 두 번, ‘써드 필(3rd Fill)’은 오크통을 세 번 재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퍼스트 필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크통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면 스피릿이 가진 고유의 특징까지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회 이상 사용한 오크통은 ‘리필(Re Fill)’ 캐스크라고 말합니다. 오크통도 여러 번 사용할수록 그 풍미를 잃습니다. 사골육수나 티백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맛이 진하게 우려지다가 끝에서는 맹탕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 이상 풍미를 뽑아내기 어려운 오크통은 분해해서 속을 깎아내고 그을려, 다시 재조립해서 사용합니다. 이를 리주베네이티드(rejuvenated)라 합니다. 오크통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모든 오크통은 내부를 불로 그을려서 제작하는데, 나무에서 달콤한 캐러멜 성분을 극대화시켜 달콤한 맛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크통을 오래 태울수록 표면이 숯처럼 갈라져 스피릿이 오크통의 영향을 받기 수월해집니다.

◇오크통 크기에 따른 맛의 변화

오크통의 크기도 위스키의 최종 풍미를 결정짓는 중요 역할을 합니다. 위스키 원액의 증발량, 숙성속도 등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여러분들은 딱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오크통은 클수록 증발량이 적고, 스피릿이 숙성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긴 숙성 시간만큼 위스키가 복합적이고 깊은 풍미를 내게 됩니다. 반대로 오크통이 작을수록 증발량이 많고, 스피릿과 오크통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해 숙성이 빨라집니다. 그만큼 오크통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진한 맛이 우러나게 됩니다.

오크통은 크기에 따라 명칭이 다릅니다. 하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표준 규격이 없으므로, 제작자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버번 오크통은 200L 용량의 ‘배럴(Barrel)’입니다. 유일하게 미국에서 표준화가 된 사이즈이기도 합니다. 반면 위스키를 숙성할 때 자주 사용되는 250L 용량의 ‘혹스헤드(Hogshead)’는, 배럴을 분해해서 더 큰 사이즈로 재조립한 오크통입니다. 최대한 많은 위스키를 숙성시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셰리 오크통은 500L 용량의 ‘버트(Butt)’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로즈아일 12년은 퍼스트 필 버번 캐스크와 리필 캐스크를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오크통의 종류만으로 위스키에서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해볼 수가 있습니다. 버번 캐스크에서는 열대과일이나, 캐러멜, 바닐라 맛 등을 예상해볼 수가 있습니다. 리필 캐스크는 최초로 사용된 버번 오크통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면서, 추가적인 안정화를 위한 숙성을 위해 쓰였을 것입니다. 생각보다 쉽죠? 이제는 첫 문장의 테이스팅 노트가 어느 정도 공감되실 겁니다.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한 싱글몰트위스키 모습. /김지호 기자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한 싱글몰트위스키 모습.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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