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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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영국 유학 일기다.
군 복무 중 전역하면 교환학생으로 외국에서 잠깐 공부할 계획이었는데 전역 2개월을 남겨두고 IMF가 터지는 바람에 나갈 수가 없었다. 98년에는 환전과 송금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제한적이었다. 99년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00년엔 졸업반이라 못 나갔다. 01년에 졸업과 동시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는데, 공무원이 되기 전 늦게라도 유학을 하고 싶어 나왔다.
2001년 3월 2일 금요일
김포공항에서 JAL항공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이 개항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JAL항공을 이용하는 한국인이 많았다. 일본을 경유해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티켓 값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석으로 왕복 115만원~125만원 수준인 데다 일본에서 하루 숙박하는 비용도 무료였다. 직항을 이용하려다 JAL항공을 보고선 직항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 JAL항공을 이용했다. KAL항공도 일본발 한국 경유 비행기는 JAL항공과 마찬가지였기에 일본인이 많이 이용했다.

해 질 무렵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JAL항공이 운영하는 닛코 나리타 호텔에 머물렀다. 도쿄에 잠깐 관광이나 하고 올까 하는 마음에 로비에서 도쿄 시내까지 가는 방법을 물었다. 공항 철도를 이용해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는 소릴 듣고 포기했다. 나리타가 도쿄 시내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인지 몰랐다. 호텔에만 있자니 너무 심심했다.
영국에서 버스킹을 하려고 통기타와 일렉기타, 색소폰을 가져왔다. 방에서 기타 치며 시간을 보내는데 시간이 왜 그리 안 가는지 따분했다. 심심할 때 보려고 가져온 영어 노트를 펼쳤다. 한국에서 짐을 챙기다가 우연히 수험생 때 만든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옛날 일기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심심할 때 보려고 가져온 것이다. 내가 만든 노트지만 참 잘 만든 것 같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아침이 밝았다. 오전 7시 반쯤 일어났는데, 비행기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반이었다. 7시 반이면 공항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난 그것을 몰랐다. 식당에서 조식을 마치고 씻고 짐을 챙겨 내려오니 8시 반이었다. 로비에서 탑승 수속이 가능했기에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담배까지 피우는 여유를 부리고 셔틀버스에 올랐다.

주말이라 그런 걸까? 출국장에 인파가 엄청났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한 줄이 굉장히 길었다. 제시간에 탑승 못 할 거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대기 줄은 거의 안 줄었는데 시간은 왜 그리 빨리 줄어드는지 식은땀이 흘렀다.
2001년 911테러 이전에는 탑승권 없는 사람들도 출국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탑승 게이트 앞까지 와서 배웅해 주는 것이 가능했다. 그날 인파도 배웅하러 온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은 어느덧 10시를 넘어섰다. 비행기를 못 탄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맨 앞줄로 달려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진상 같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항공사 창구에 가서 짐을 내려달라고 해야 하나? 창구를 바라보니 거기도 줄이 길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저 목소리가 날 살릴 것이란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유니폼을 보니 JAL항공 직원인 것 같았다. 내 여권과 탑승권을 확인하고는 내 손목을 잡고 뛰었다. 어디로 가는지 물을 여유 따윈 없었다. 정신없이 뛰었다. 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땐 거의 10시 반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비행기가 움직였다. 내가 마지막 탑승객이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비행기를 탈 땐 출발 3시간 전에 도착했다.

<옛날 비행기는 좌석 모니터가 작았다.>

<앞 좌석과 간격이 좁아 괴로웠다.>
난 키가 188.7cm에 몸무게 85kg으로 체구가 큰 편이다. 앞 좌석과 간격이 좁은데 앞 사람이 의자를 뒤로 젖히면 내 무릎에 의자가 닿고 숨이 막혔다. 게다가 내 자리는 좌석 3개중 가운데여서 더욱 답답했다. 리모컨을 꺼내 모니터를 조작하며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갑자기 몸이 이상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속이 울렁거리는 게 아무래도 사고 칠 것 같았다. 앞자리 그물망에 그럴 때 쓰라고 종이봉투가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통로 쪽 자리에 앉은 여학생에게 밖으로 나간다는 제스쳐를 취하니 일어나 비켜주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입 열면 바로 쏟아질 것 같은 상태였다. 억지로 침을 삼키며 속을 누르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화장실이 비어 있었다. 재빨리 문을 잠그고 변기에 머릴 숙였다.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나니 거짓말처럼 땀이 멈추고 속이 편안해졌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니 걱정이 앞섰다.
멀미나 고소 공포증은 아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본 것도 아니었다. 카투사로 미 육군 항공대에서 복무했는데 현존하는 모든 수송기와 헬기를 지겹도록 많이 타봤다. 패스파인더라는 보직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고도 3만5천 피트 상공에서 다이빙했다. 군용기와 다르게 자리가 너무 좁은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승무원에게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좌석을 업그레이드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빈자리가 있으면 가능하지만, 불행하게도 만석이라 업그레이드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단다. 울적하니 담배가 생각났다.
기내 금연이 시작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흡연자에게 장거리 비행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하와이를 간 적이 있는데 비행기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기내에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그때는 비흡연자라 괴로웠는데 이제는 흡연자라 괴로웠다. 승무원에게 흡연 장소 없냐고 물어보니 니코틴 패치를 주었다. 한숨을 내쉬며 팔에 붙이고 잠을 청했다.

눈떠보니 점심시간이었다. 밥 먹으면서 내비게이션을 보니 블라디보스톡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당시에는 시베리아-북극권-북유럽 항로를 이용했다. 러우전쟁 터지기 전까지 이용하던 항로였는데 전쟁 이후 이용을 못 한다. 밥 먹고 맥주를 얻어 마시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밥 먹을 때만 눈을 떴는데 중간에 간식도 한 번 있었다. 북유럽에 들어서자 마지막 식사가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으로 향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있는데, 영국으로 가는 여정이 그 중 하나였다.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연재 가나요? ㅎㅎ 저와 비슷한 세대시군요.
Dave0723님의 댓글의 댓글
조금만 써 볼까봐요^^ 그런데 04uk.com은 제 기억에 다음 카페에서 중고 게시판 글이 너무 많아서 따로 만든 사이트였는데 아닌가요? 옛날 생각에 카페 찾아갔다가 글이 없길래 여기로 왔더니 여기만 활발하네요.
운영자님의 댓글의 댓글
네 원래는 그랬는데 2010년경에 여기로 아예 다 이사왔어요
soleil님의 댓글
글을 참 잘 쓰시네요. 간결하고 조리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가 떨어짐 없이 잘 읽었어요. 좀 더 써 주시면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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