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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어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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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간통조림 이름으로 검색  (220.♡.249.213) 댓글 0건 조회 4,143회 작성일 10-10-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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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1, Autumn leaves





자고 일어났더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나는 엇나간 톱니바퀴처럼 어느 부분에도 속하지 않아 혼자서 경계주위를 겉돌고 있는 듯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기르던 개가 죽었는지 알 길도 없다. 어느 누구도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그들 틈에 껴서 그들을 관찰할 수 있다. 군중 속에서 빨개 벗고 광대처럼 춤을 춰도 눈길 한번 주는 이들은 없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Track 2, Never come closer





작은 몸집으로 비포장 도로를 걸어다니는 일은 버거운 매일의 연장이었다. 심온이는 뽑기를하러 부강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가녀린 종아리로 먼지가 흩날리는 비포장 도로를 촘촘히 그리고 빼곡히 걷고 있었다. 녹슨 하얀색 용달차의 운전기사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뒤에 올라타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잽싸게 달려가 용달차의 끄트머리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볼에 스쳤고, 나는 비포장 도로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단내가 나는 달고나는 맛있다기 보다 별을 만드는 재미로 사먹었다. 나는 별을 정확하게 만들어서 떼어내는 재주 따위는 전혀 없었다. 지긋지긋해, 나는 방방을 탔다. 신기하게도, 이 방방은 나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한 바퀴 돌고, 또 돌고, 하늘이 푸르다고 중얼거렸다. 심온이는 싫증이 났는지, 개구리를 잡으러 가자고 말했다.











Track 3, Time after time





나는 좀더 자라고 싶었다. 키는 언젠가부터 고정된 체로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나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바늘이 있는 검정 손목시계를 차고, 생소한 도시의 한복판을 고개를 뻣뻣이 세운 체 걷는 것이다. 절대로 길을 잃어버리는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고,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해를 당하는 일도 없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동네 할머니가 나를 붙잡고 이름을 물어봤다. 할머니는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을 듣고 싶었던 것이 분명했다. 꿈이 뭐냐고 대뜸 묻기도 한다. 나는 얼떨결에 간호사라고 해버렸다. 집에 와서 한참을 키득거렸다.





Track 4, Lovin’ you





그는 너무 섬세했다. 완전무결한 문체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글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랑비에 흠뻑 젖은 오래된 나뭇잎 같았다. 목소리에 오래된 향이 묻어났다. 그는 내게 어른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잴 수도, 재려고 해도 재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릴 적에 누워서 콧노래를 불렀던 무덤가만이 불쑥 기억 속에서 꿈틀거렸다.





소년은 우울하지 않았다. 다만 우울 속에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Track 5, California dreaming





나는 그녀처럼 비오지 않는 날에 레인코트를 입고 썬그라스를 끼고 있었다. 비가 언제 올지 몰랐고, 해가 언제 뜰지 몰랐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다.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사고 싶었지만 돈이 모자랐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미친 듯이 걷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게으르다. 그것이 문제였다.








Track 6, Fly me to the moon





자고 일어났더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결정들은 나로 인해 이루어졌다. 어깨가 조금 무거워진 듯 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네가 그리웠다.








.... 벌써 네가 죽은지 4년이나 넘었다. 미안해 자주 기억해주지 못해서. 그리고 고마워, 살아남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줘서.


라비린스
얼........소설인가요... 아님..일기...같은건가...
시간통조림
음악듣다가 심심해서 제 얘기 좀 쓴 거에요-_-; 일종의 변종일기 같은 거.. 히힛힛.
봄날의 곰
이런 문체 좋아요~ 실화라면 일단 심심한 사과의 말씀부터 올리고... 남자분인 듯한 말투였는데 여자분이신가봐요~ 저도 이런 식으로 일기 쓰고 싶어요! (따라쟁이.. 그러나 게으르다... -_-;) 종종 또 올려주세요~
시간통조림
크헉, 왜 다들 저를 남자라고 오해하는 걸까요~ 저 여자에요 히히. 실제로 보면 다소곳하고 얌전한(우헤헤헤헤 뻥) 여자입니다. 아무튼 일기야 한 4전 년부터 여기서 쭈욱 썼었는데, 아이디로 검색하시면 나올 듯. ㅎ 근데 아뒤는 봄날의 곰이신데 옆에 병아리네 히히 봄날의 ?아리로 아뒤 바꾸심이 어떤지,,? ㅎ
봄날의 곰
영자님.. 곰도 만들어 주심이.. 쿨럭..
몽블랑
오랜만에 보는 시간통조림님의 '글'이군요 반가운 냄새가 납니다. 예전에 처음 읽었을때 my own circumstance가 기억나니 기분이 묘하다가 착잡해지네요. 그땐 여러가지로 좋았는데 ㅡ.ㅜ;
시간통조림
글이라 ㅎ, 글 안 쓴지 꽤 오래됐는데..흐흐. 그 My own circumstance가 뭡니까? 궁금해지네 ㅎㅎ
바이런
깨어나 보니 유명해져있었다..제가한말이 갑자기 생각이나서..ㅡㅡ;;
시간통조림
헐, 뭔 소린지..ㅎ 죄송 머리가 나빠서..
속상한 늘보
헉.. 남자 아니셨어요? (ㅋㅋ 장난~) 글체 멋있어요.. 소설 읽는듯한.. "Lovin' You" 라는 노래.. "Loving you is easy 'cuz you're beautiful lalalalala"어쩌구하는거 아니에요?
시간통조림
그 노래 맞아요.. 전 취향이 구려서 그런지 오래된 노래만 듣거든요. ㅎ 아니면 클래식 듣습니다 (유식한 척) ㅋㅋㅋ ㅋㅋㅋ
바이런
영국시인 바이런이 한말이에요. 그런의미에서 그이 시한편소개를./ 단 한 번만 용기를 내서 당신을 보기 위해 눈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하늘 아래 내 눈은 다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잠은 밤에 내 눈을 헛되이 감기고 밤은 나에게 낮이 되어 꿈밖에 아닌 것을 공연히 꾸게 하였다. 그것은 비운의 꿈으로, 수없는 훼방이 당신과 나의 운명을 갈라놓고 있었다. 눈뜨고 있는 나의 가슴은 지금도 세차게 싸우지만 당신 가슴은 언제까지나 안온하도록 어린 사슴처럼 민첩한 그대 눈동자에 맹세코 '나의 생명인 그대,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시간통조림
영어로 써주세요 ^^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의 Maid of Athens, ere we part 라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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