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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 ROLLING TABACO (15번소설시리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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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번진짜안와 이름으로 검색  (220.♡.249.213) 댓글 0건 조회 3,085회 작성일 10-10-0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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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은 뭐가 이렇게 길어! 간만에 써서 그런 거냐? ㅡㅡ;;


어쨌든 말아피우는 담배에 대한 일전의 에피소드에 픽션을 듬뿍 멕여 소설화했어요. 모쪼록 즐감^^











<단편소설> Hand Rolling Tabaco





서울도 물가가 비싸기로는 어디에 내 놓아도 꿀리지 않지만 런던의 물가는 살인적으로 비싸다.


물가를 다투는 랭킹에서 런던이 그 오랜 자존심을 구긴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살인적인, 이라는 말이 붙어있다.


분명 누군가가 비싼 물가를 견디지 못해 죽어갔기 때문이겠지. 런던의 물가라는 살인자가 나를 타깃으로 잡으면 곤란하다.


실제 런던에 와서 느껴보니 정말 사람을 죽이겠더라고. 점쟁이가 올해 물가를 조심하라더니. 신통하군.


나는 런던에서 할 일이 많다. 물가에게 당하면 안 된다.





나는 좀 늦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지금이 스물아홉 살이니까 10년 이상 빨아댄 셈이다.


짧지 않았던 그동안의 삶을 애연가로 살면서, 도대체 담배를 왜 피우는 것일까? 같은 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애초부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처음으로 피워봤을 때 어쩐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듯 세상을 잠깐 멈춰 놓고


멋스럽게 볼 수 있는 포즈 같은 걸 얻었다는 기분이 들어서 매우 사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멋쩍게 쓴 웃음을 지었었다. 처음 담배를 문 나 자신을 본 거울 앞에서 그 쓴 웃음은 퍽 댄디해 보였다.





그리고 담배는 은밀한 털처럼 익숙해졌다. 누구나 그렇듯이 익숙해진 다음에는 그냥 피우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피울 거면 끊어버리는 건 어떨까 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자빠져있을 정신 같은 게 없었다. 20대란, 알다시피 몹시 바쁘다.


눈 코 뜰 새 없이 워낙 쾌속으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벌써 스물아홉 살인 나는 엄청난 속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20대가 1년 밖에 안 남았다니! 가만히 있어도 똥줄이 타는 시공간에 살면서 담배를 안태울 방법이라곤 없었다.





어쨌든 20대의 마지막 해에 나름대로 멋진 30대를 구가하기 위해 런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계획 중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견디고 공부를 마치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뽕 뽑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계획에 차질을 일으킨 것은 연애도, 인종차별도, 빌어먹을 영어도 아니었다. 바로 담배였다.


나는 일찍 파트타임 희도 구했고 그걸로 방값과 생활비를 가늘게나마 충당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살고 펑펑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해대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난 내 런던생활경제를 지속하는 데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말았다.


나는 그것이 담배 때문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날 학교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며 습관적으로 책상 밑에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담배보루들이 들어있던 이민가방에 손을 넣었다.


그것은 내가 항상 새로운 담배 곽을 꺼내는 우아한 동작이었으며 손을 조금만 뻗으면 뜯어진 보루와 그 안의 담배 곽이 의심 없이 만져지곤 했던 확고한 일상이었다.


담배가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올 때 규정인 2보루를 넘겨 이민가방 밑에 6보루나 깔아서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그 날은 손을 깊숙이 넣어봤지만 아무것도 손끝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보루를 뜯을 시점인가, 라고 생각해서 이민 가방을 빼고 가방 안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빈 보루들만이 가득했다.


어제는 담배를 좀 많이 피워 목이 좀 따끔할 지경이었는데 그게 마지막 담배인 줄 알았더라면 울며불며 아껴 피웠을 텐데, 라고 순간적으로 후회했다.





나는 혹시 꺼내다 누락된 한 갑이라도 있을까 봐 이민가방 속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속에 가지런하고 매력적인 담배들이 꽉 차있는


온전하고 예쁜 담배 곽 같은 건 완전히 한 갑도 없었다.





나는 우선 시간이 좀 늦었기 때문에 집에서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공기 속에 버스 모양을 그리며 비어있는 버스 레인을 바라보고 있는데 담배 한 대가 몹시 당겼다.


빨리 버스가 왔더라면 담배 생각 같은 걸로 미쳐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버스는 죽어도 안 왔다.


담배 한 대 피울 타이밍이었다.





마침 중년의 신사 한 명이 자리에 앉아 뭔가를 주머니에서 구질구질 꺼내 말고 있었다.


멀쩡한 신사가 마리화나를 아침부터 피운단 말인가? 하면서 바라보니 핸드롤링 타바코였다.


그는 금방 능숙하게 한 대를 말더니 침을 발라 마무리를 짓고 불을 붙여 맛있게 한 대 피웠다.


그렇지만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에서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버스 정류장에서 몸뚱이를 숙이고 담배를 만 뒤


혀를 내밀어 마무리 짓는 동작은 아무래도 졸렬해 보였다.





하지만 졸렬하게만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평소에도 잘 오지 않던 15번은 내가 기다리다 지쳐 담배만 물면 오곤 했었는데


나는 담배가 없었으므로 그런 평소의 주술조차 부릴 방법이 없었고 그 순간부터 미친 듯이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정류장 근처의 뉴스에이전시에 들어가 담배를 사기로 했다. 벽에 잔뜩 진열된 담배들은 우리나라에도 판매되어


낯익은 것도 있었고, 리치몬드, 로열스, 소버린 등등 전혀 낯선 것들도 있었다. 나는 늘 피우던 국산담배 레종 대신에


말보로 라이트 한 갑을 주문했다. 처음에는 레종 한 갑 주세요, 라고 말할 뻔 했다.


런던에 와서 담배를 사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문장을 미리 만들어 본 다음 그것을 말했다.





Can I Have a Malboro Light Please.





나는 좀 더 영국 발음에 가깝게 캔아이 대신에 칸아이, 맬보로 대신에 말보로, 라잇 대신에 라이트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계산대의 인도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아침에 담배를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건조한 친절 같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쏘리? 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저기...말보로 라이트. 말보로 라잇? 맬보로?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내 다음 말들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못하는 척을 하며 진열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가리키는 건 벤슨 앤 헷지스였다. 아무리 내 발음이 나쁘다고 해도 말보로랑 벤슨 앤 헷지스를 어떤 식으로 헷갈리냐,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팔을 길게 뻗어 손끝으로 말보로를 가리킨 끝에 간신히 한 갑을 구입했다.


당황하는 관광객이 된 기분이었다.





빌어먹을,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5파운드 20펜스! 한 갑에 만 원씩이나 했다.


담배 한 갑에 만 원이라! 제기랄. 나는 지갑에 달랑 한 장 들어있던 5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내 그에게 건네고


주머니 속에서 20p 동전을 꺼내 지불한 다음 기분 나쁜 듯이 담배 곽을 뜯었다. 뒤에서 인도인이 매력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웃음은 ‘너 가난해 보이는데 런던에서 담배를 사 피운다니, 부자냐? 바보냐?’ 라는 비아냥처럼 느껴졌다.





이건 이렇게 발음해야해. 친구. 말볼오 을라이트.





그가 가르치듯 내 뒤통수에 한 말은 내가 한 발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뉴스에이전시에서 나오자 15번이 막 한 대 정류장에서 출발했다. 나는 구조 요청을 하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손을 흔들며 달려갔지만


버스는 육중한 2층의 덩치만큼 커다란 무관심을 표명하며 달려가 버렸다.


나는 당장 이런, 젠장. 이라고 2층 버스 엉덩이에 고함을 꽂아 넣었다.





버스 정류장 바닥에는 좀 전의 신사가 물었던 핸드롤링 타바코 한 대가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슬림한 자태로 뒹굴며 아직 연기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대 빨자 몹시 독했다. 말보로 라이트가 이렇게 독했던가.


나는 오래간만에 기침을 하며 담배를 피웠다. 만 원이나 주고 산 담배 안에 겨우 스무 개비의 담배들뿐이고


지금 하날 피웠으니 열아홉 개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없는 이국의 버스 정류장처럼 어쩐지 쓸쓸했다.


일주일 생활비로 십 파운드만 쓰면서 살아가는데 한 갑의 담배가 그 절반이라니. 게다가 열아홉 개비로 남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며 오 파운드로 남은 일주일동안 뭘 처먹고 살아가나, 라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 고민은 내 생활비가 말도 안 되게 적거나 담배가 말도 안 되게 비싸거나, 어떤 쪽일까 생각해 보는 쪽으로 발전했다가


결론은 둘 다잖아, 라고 울분하며 끝났다.





하지만 학생 비자로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도록 정해져 있는 영국이기 때문에 지켜야만 했고 지키지 않더라도


학교에 가고 에세이를 낼 시간이 부산스럽게 달그락거려 다른 일을 구하기도 싫었고, 또 구할 수도 없었다.





다음 빌어먹을 15번 버스를 20분이나 기다린 끝에 나는 학교에 지각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국민의례처럼 피우던 담배도 피우지 않고 나는 바쁘게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은 그날따라 교수가 특유의 영국식 ‘먹는 발음’을 더 맛있게 먹어치우며 발음해서 도통 들리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 넌 오늘 왜 담배를 안 피우느냐고 물어왔다. 평소에 담배인심 좋기로 소문난 나였기 때문에


내가 피우고 있으면 한 대쯤 얻어 피우려는 표정이 역력하던 자식들이었다. 그 녀석들은 한 대 맛있게 얻어 피운 뒤,


담배 이름이 근사하다거나 한국산 담배는 역시 맛있어, 라고 추켜 세워주는 걸로 공짜담배 인사치레를 할 뿐인 녀석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는 대신 누군가가 담배가 남아돈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나 난생 처음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찾지 못하자 사람이 없는 구석에 가서 몰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다음,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던 마음이 사라질 최소한의 모금만 세 번 정도 빨고 건물 벽에 잘 비벼 꺼서 담배 곽에 도로 집어넣었다.





듣는 둥 마는 둥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런던에 온 지 꽤 되었다던 옆방의 김형에게 정보를 묻기로 했다.


어쩌다 거실에서 술을 마시다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항상 담배가 문제라며 말아 피우는 담배를 피우곤 했었다.


그는 내가 이거 한국 담밴데 피워보세요, 라고 해도 피우지 않았었다.





“싫어. 그걸 피면, 말아 피우기 싫어져.”





김형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내 사연을 듣더니 읽던 책을 내려놓고 당장 내 손을 이끌며 뉴스에이전시에 갔다.


그는 골든 버지니아 스몰 팩과 스완 필터 팁스, 그린 페이퍼 등등을 주문해서 나에게 건넸다. 그것도 이래저래 오 파운드였다.





“말아 피우려면 이 세 가지가 필요해. 이거면 이 주일은 피우지.”


나는 또 오 파운드를 쓰고 말았지만 이 주일은 피운다는 말에 오 파운드가 아깝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다.





그는 거실의 넓은 탁자 앞에 나를 앉히고 담배를 마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말아주는 기계도 있다면서요?”


“안 돼. 그런 걸 쓰면. 그건 담배가루가 너무 많이 소비돼. 이걸 아껴야지.”


그는 팩에 들어있는 담배가루를 거의 손끝을 모아 병아리 모이 정도밖에 안 될 만큼만 떴다.


그리고 종이위에 펼쳐놓은 다음 필터를 끼워 돌돌 말아나갔다.





“이렇게 끝에서부터 시작해. 필터의 원을 이용해서 굵기를 맞추는 거지.”


그는 연금술 노하우라도 가르치려는 듯이 진지한 태도로 나를 교육했다.


그는 침을 발라 마무리를 지은 다음에 내게 건넸다.





“자, 이게 백 점짜리. 피워 봐. 맛도 괜찮아.”


난 아무래도 남의 침이 발라진 담배를 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형 침으로 발랐잖아. 내껀 내가 해 볼게.”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을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이건 내가 다룰 수 없는 악기를 연주하려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몇 번이고 담배를 담배모양으로 마는 데 실패했다.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가루가 너무 작게 들어가 핀처럼 말아지고 가루가 앞으로 다 빠져버린다거나, 뚱뚱하게 말려 필터 크기를 넘어서서


필터가 쏙 빠져버려 가루가 뒤로 다 빠져버리는 식이었다. 절대로 길게 가루를 채운 단단한 원통형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보다 못한 김형은 충고를 한 마디 남기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한국 사람의 손재주가 여기 손 굵은 사람보다 못할 리가 없다.”





나는 그날 밤 열심히 담배 마는 연습을 하다가 아예 담배 가루를 모두 흘려버리기도 하면서 이런 걸 연마하기 위해 런던에 왔단 말인가,


하는 회의를 몇 번이고 느꼈다.





결국 포기한 나는 아침에 샀던 말보로 라이트를 피우며 밤을 보냈다. 나는 한 개비를 세 번에 나누어 피웠다.


끌 때 조심해서 끄지 않으면 몇 모금이 그냥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살살 돌려서 비벼 껐다. 담배 마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이렇게 담배를 잘 끄는 기술이나 익히는 게 낫겠다 싶었다. 도대체가 니코틴을 계속 공급받기 위해 피우는 게 아니라,


인생의 한 순간을 멋지게 정지해 놓는 여유를 부리려고 피우던 것 아니야. 근데 이렇게 정밀한 노동을 해가며 피우는 건


그 최초의 의도에 어긋나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말보로 라이트가 떨어졌다.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자 어설프게 말아 피우던 담배도 모두 동이 났다. 나는 또다시 뉴스 에이전시에 갔지만,


그냥 필터담배를 피고 싶다는 열망에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다시 핸드롤링 타바코를 사고 말았다.





“오, 이제 잘 마는데? 과연 자네가 만 거야?”


옆방의 김형은 내가 새로 사와서 쫀쫀한 상태라 잘 말아진 담배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따 갚아줄게.”





나는 뭘 갚는다는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담배 마는 기술을 가르쳐 준 ‘사부’ 에게서 하산해도 좋다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저녁 무렵 다시 거실에서 마주친 김형이 새로 사온 듯한 담배가루 팩을 뜯어 아까 가져간 한 개비만큼의 담배가루를 집어 들어


내 팩에 담아주자 ‘사부’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우스워졌다.





“뭐 하러 이래?”


“쪼들리는 생활일 땐 담배가루 한 옴큼으로도 의 상한다.”





나는 그 다음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구하러 다녔다. 도저히 그런 식으로 궁상맞게 담배를 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옴큼에 의 상하는 세계라니. 남자로서 능력 부족이야.





운 좋게 집 근처의 조그마한 세차장에서 주말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담배를 사 피울 수 있겠다며 환호했다.


방값과 생활비는 오전에 하는 일로 딱 알맞게 벌고 있었는데 담배를 사 피우기 위해 일을 더 한다는 것은 좀 웃긴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돈을 모아 가까운 나라라도 여행하고 싶어서, 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이유를 덧붙이며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하루에 6시간 정도 차를 닦으면 주급을 100파운드나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거의 한 번 나가는데 50파운드였다.


일이 좀 힘들기는 했지만 급료 외에 팁으로 나오는 돈까지 있었다. 정성껏 차를 닦아주면 영국인들은 내게 1,2 파운드씩 팁을 건넸다.


기분 좋게 5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내 주는 사람도 있었고, 커다란 50펜스짜리 동전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뭐가 됐든 그 팁들은


나의 훌륭한 담배 값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뒤로 담배를 말지 않게 되었으며 담배가 떨어지면 항상 가게에 들러 사 피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슬슬 돈이 조금 모였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던 내게 김형이 황급히 다가오더니 어려운 부탁을 했다.


“미안. 같은 한국 사람끼리 한번만 도와줘.”


“뭔데요?”


“돈 좀. 200파운드만.”





나는 통장에 조금씩 모으기 시작한 돈이 300파운드 정도 있었다. 돈을 더 벌면서 씀씀이도 커져 많이 모으는 속도는 느려 터졌지만


어쨌든 모이고는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부인했다.





“돈 없어요.”


“야. 돈 없는 놈이 어떻게 영국 담배를 사 펴. 급하니깐 좀 도와줘.”


아, 나는 영국에서 담배를 사 피운다는 죄로 김형에게 200파운드를 빌려주고 말았다.


나는 그가 어디에 돈을 쓰려고 하는지 묻지 않았다.





주말에 세차를 끝내고 노곤한 몸을 거실에 앉아 담배 한 대를 맛있게 빠는 걸로 쉬게 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방문객들을 맞았다.


그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는데 김형을 찾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뻔하디 뻔한 스토리를 눈치 까고 말았다.


모두들 김형에게 100에서 200파운드씩 빌려줬고 김형이란 사람은 영국을 떠나버렸다고 했다.





“세상에 말이야, 돈 없는 유학생들 뼛골을 빼먹다니, 어떻게 그런 인간 이하가 있단 말이냐.”


“안 잡힐 줄 알지. 잡히면 때려 죽여 버릴 거야.”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나를 상대로 험악한 말들을 늘어놓고 사라져 갔다. 그들도 답답한 마음에 김형의 주소지였던 집에 와본 것일 뿐일 테지만


그들이 가고 나서 나는 담배를 5대나 더 피워야 했다.


“젠장 200파운드면 담배가 4보루잖아!”





그리고 다음 날 실의에 잠겨 있다 주중에 일하던 식당에서 시원하게 잘렸다. 안 좋은 일은 도미노 식으로 일어나 치사하다.


마침 디저트 주문이 들어와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냉장고에 갔다가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던 것인데도


이상하게 한 입 맛보고 싶어져 옆에 있던 포크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뜨는데 사장에게 딱 걸렸다.


아니 어째서 냉장고 안에 그날따라 포크는 하나 있느냔 말이지.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광기처럼 주말 세차장에서도 잘렸다. 열심히 차를 닦던 내 팔꿈치에 사이드 미러가 닿자마자


이상하게도 힘없이 툭 부러져 떨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세게 부닥치지도 않았다. 차는 조금 오래된 혼다 시빅이었는데


믿기지가 않아 원래부터 떨어져 있었던 게 아니었냐며 씨익 웃었는데 다짜고짜 머리가 훌렁 벗겨진 차 주인이 왜 웃는 거냐고 다그치다가


끝내는 인종 차별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고 나는 화가 나 맞서서 함께 욕을 해대며 싸웠고 물통을 걷어차는데


사장이 나타나다 맞았고, 당연히 그 즉시 잘렸다.





머리카락이 휘날릴 만큼 바람이 불고 영국답게 조금씩 거지같은 비가 흩날리는 아침,


나는 공항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도 졸업 못하고, 돈도 떨어졌다.


담배가 이렇게 내 발목을 잡다니. 쓴웃음이 한 바가지 정도 뒤집어 씌어졌다.





‘담배는 이런 날 잘 말아지지.’


다음 순간 나는 버스 정류장 광고판을 한 대 칠 뻔 했다. 광고판 투명 아크릴에 반사되는 내 모습 때문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커다란 가방을 쥐고 한 손으로는 담배를 말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렇게 말아서 한 대 이미 물고 있었다.


광고판에 비친 희미한 나는 분명, 광고판 속 말보로 모델이 짓고 있는 와일드한 여유와 딱 대비되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쓴웃음이 몹시 졸렬하다고 생각했다. 손에서 가방이 툭 떨어졌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담배연기와 눈물을 함께 깊숙이 빨았다.





-끝-











길어서 죄송합니당. 이 게시판엔 본격소설보다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쓰는 게 옳을 텐데. 능력 부족이군요....ㅡㅡ;;


시인과낙엽
이글을 보는 순간 저의 미래를 보는거 같아요....아무래도 슬슬 담배를 줄여나가면서 끊어야할것같은 느낌이 팍팍오네요ㅠ 힘내세요~
onlyformomo
요번도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가요???^^
Golders Green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공항 픽업 알바로 한국담배 한보루씩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준시기™
정말 오랫만에 "영국일기"게시판에 들어왔는데 반가운 이름이 아직도 건재하시는군요! 짧은 시간이나마 정말 재밌게 읽고 갑니다. 글을 읽으면서 2005년의 런던이 머릿속을 마구 스쳐가는군요~ 특히 말아피는 대목에선 절로 맞장구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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