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2">짧게 때리는 소설 시리즈 3 - I Can't</font> > 영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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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2">짧게 때리는 소설 시리즈 3 - I Can't</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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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5번진짜안와 이름으로 검색  (220.♡.249.213) 댓글 0건 조회 2,330회 작성일 10-10-0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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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진짜안와의 짧게 때리는 소설 시리즈 3



I Can't



런던에 가을이 왔다. 저녁이면 옆구리에 빗금이 그어질 만큼 추웠다.


애인과 함께 있지 못하는 남자의 가을저녁이란 콧구멍만 벌름거려도 눈물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가을이니 난방은 당연히 시작되지 않아 집 안팎으로 몸이 시렸고


애인도 한국에 있는 신세니 몸 안팎으로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내가 ‘아’ 계통의 발음을 ‘애’ 계통으로 발음해 버리는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 오빳! 내 라면 먹었어?



하우스메이트인 여동생 ‘희’가 내 방문을 벌컥 열며 말했다.


나는 한국의 애인에게 보낼 레몬타르트 같은 엽서를 쓰고 있었는데 얼른 책상 밑으로 숨겨야했다.



- 야, 노크 좀 해면서 들어 와. 아무리 친오빠래도 매너가 있지.


- 매너고 나발이고 오빠가 내 라면 한 개 남은 거 먹었냐고!!



나는 여동생이 런던아이처럼 커다란 눈으로 다그치는 소리에 조금 기가 죽었다.


오빠라고 런던에 함께 나와서 잘 해 주는 것도 없으면서 여동생 라면을 먹긴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 가 ‘애’로 발음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 왜, 너도 저번에 내꺼 돛대 먹었잖애.


- 뭔 소리야. 말 똑바로 안 할래?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날 여동생에게 머리를 맞고 시내까지 가서 라면을 사다 놓은 뒤,


나는 라면을 끓여달라고 말했다. 발음이 꼬이는 게 심화되고 있었다.



- 사왔으니 끓여라. 난 니가 핸 라면이 제일 맛있더라.


- 싫어. 안 끓여.


- 너 나를 오빠로 생각해기는 해니?


- 정말, 한국말 똑바로 안 할래? 니가 핸, 이 뭐야.



실제로 한국어를 쓰는 사람 중에는 이와 비슷하게 발음하는 수도권 지역의 말버릇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수도권 사람도 아니고 고향이 부산인데 한 번도 이런 발음을 듣거나, 해 본적이 없었다.



이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될 것 같은 문제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살짝 심각해져야 했다.


내가 뉴욕이나 LA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런던에 있기 때문이었다.



- 오빠. 그럼 '나한테 물어볼게 있어'를 영어로 해 봐.


- 캔 아이 애스크 유 썸띵?


- 이것 봐. 그러면 안 돼. 왜 그래? 오빠.



그랬다. 큰일이었다.


‘아이 카안~트 I can't’ 라고 발음해야 될 것을 ‘아이 캐앤~’ 이라고 하질 않나,


‘아스크 Ask’ 를 ‘애스크’ 라고 하질 않나.



함께 어학연수를 나온 하나뿐인 여동생은 그런 나를 싸잡아 약 올렸다.



- 오빠, 그러려면 미국으로 꺼져. 왜 영국에 왔어. 영국 발음이 요염해서 꼭 해야 한다며.


- …….


- 웃기려고 그러는 거지? 오늘 학원에서 선생이 오빠 얼굴 빤히 보면서 미스터 파크, 카안~ 해보세요 하고 시킬 때 나는 웃겨 죽는 줄 알았어.



하지만 그것은 웃기려던 것도 아니고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다.



여동생과 거의 일용할 주식으로 끓여먹는 라면이 래면이 되고 고함을 질러도 오빼개 공부핼땐 문 좀 열지매! 식으로 심각해 지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싶어서 아아아아아! 라고 내 지르는 고함도



애애애애애! 가 되었다.



새됐다, 라는 심정이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학습한 미국영어에 길들여져 있던 발음 체계가


영국에 어학연수를 오자마자 맞이한 엄청난 혼란 때문에


중증의 오작동을 일으킬 만큼 고장나 버린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퍽 난감했다.



일단 여동생과 같이 나오는 바람에 학원의 같은 반에서 수업하는데 마냥 쪽팔려서 견딜 수가 없고,


영국 영어를 배우러 왔는데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면 오빠가 자기보다 영어에 더디다며,


오빠는 한국말도 나보다 늦게 배우지 않았냐며 모녀간에 호호호, 하면서 통화하는 것 때문에 자존심이 있는대로 구겨졌다.



나는 Hospital 같은 단어를 호스피텔, 로 발음하지 않기 위해 대충 얼버무려 호스피럴~ 식으로 뭉개 버리며 갑자기 내게 찾아온 발음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아예 그순간부터 발음 체계가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더니 무너지는 발음의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맥도날드가 먹도널~ 이 되고 저런, 테이트 모던이 테잇 마른, 이 되고



가장 영국적인 발음 차트 랭킹 1,2 위를 다투는



배터 Batter와 보틀 Bottle을 배러, 보를, 식으로


말도 안 되게 발음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여동생과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처절하게 얼굴을 맞대고 상의했다.


여동생도 그 즈음이 되자 단순히 웃고 약 올리는 게 아니라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 오빠 큰일이다. 왜 갑자기 그러는 거야. 뭐가 불만이야?


- 몰래, 개을이래서 그랜개배.


- 아 어떡해. 이젠 오빠 한국말도 못 알아듣겠어.


- 미치겠. 병원에 핸 번 가 봐야 하는 것 아닐.



나는 할 수 없이 잘못 발음이 튀어나오려고 하면 발음을 삼키며 말을 끊었다.



- 그냥 발음 해. 그런다고 고쳐지겠어. 그리고 영국에서 병원엘 어떻게 가? 우린 NHS도 없잖아.


- 글게.


- 오빠 사귀는 여자 없지?


- 핸국에 여재친구 있잖아.


- 너무 멀어. 멀리 떨어져서 그럴지도 몰라. 여기서 한 명 사귀어 보는 건 어떨까? 언니랑 통화도 잘 안 하잖아.


내가 보기엔 오빤 외로워서 그러는 게 분명해.



여동생은 고독의 문제라고 짚었다. 나도 살짝 그렇게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가을이고, 외롭고, 애인이 없다고 해서 발음이 엉망이 된다는 건 빅토리아 베컴 살찌는 소리와 같다.



여동생에게도 분명 애인은 없다. 왜냐면 아무도 집에 데리고 오지 않고, 불러도 대답 못할 만큼 딴 생각에


잠겨 있는 적도 없고 외출하면서 외모에 공을 들이는 적이 없으니까.



그런 여동생에게 사랑에 대한 충고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 여동생의 의리 관념을 타겟으로 잡고 툴툴거렸다.



- 내는 의리개 있어서 그게 안 돼. 그리고 여기서 설령 여친을 맨든다고 해도 네 등쌀에 집에나 데리고 오겠내?


- 오겠내? 오빠 왜이래, 나 몰래 월북했던 적 있었어?


- 아 뻑* 이거 왜 이러내. 이거 어떻게든 좀 고쳐애 앤 되겠네?


- 뻑* 아니라 뽁*이야. 아, 우리 오빠 맛 갔어. 대화가 안 돼!



여동생과는 머리를 맞대 봤자 해결책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한국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 앤녕, 댈링.


- 와! 박상이다! 야, 왜케 연락이 없었져.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 애인! 내도 그랬지. 새랭해.


- 오잉? 새랭해?


- 아니 그게 아니라, 새랑 한대고.


- 무슨 말이야. 박상,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언제 와?


- 미앤해. 요즘 밸음이 갭재기 쫌 그래. 해지맨 널 새랭해. 변함 없어.


- 아씨. 뭐야. 오랜만에 전화해서 장난쳐?


- 애니애. 갭재기. 아이 캔 낫 프로나운스 애. 내는 너를 새랭…….


- 아이 캔? 비싼 국제 전화로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미국 발음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하나도 안 웃겨.



나는 그날부터 좌절에 빠져 지내야했다.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딱 떨어지는 아, 오, 티, 발음을 할 수가 없었다.


왜 하필 영국에서 발음이 왜 이렇게 되고 만 걸까.



그리고 부끄러워서 학원에도 가지 못해 수업이란 수업은 다 빵꾸 내고 집에서 혼자 영어 공부를 해야 했다.


외롭고 쓸쓸했다. 짧은 어학연수를 와서 영어를 어느 정도 잡아내지 못한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너무나 쪽팔릴 것 같았다.



같이 나온 여동생은 내가 보기엔 예쁘지 않지만 성격이 좋아서 그런지 애인 없이도 잘 버티고,


학원에서 외국인 친구들도 잘 사귀고 웃으면서 농담하고 심지어는 술자리에도 참석해서 껄떡대는 딴 나라 애들에게


튕기기도 하면서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발음이 개떡 되고 이 모양인 것이다.



내 장애의 가장 개떡같은 점은 이런 거였다. 미국영어라고 무슨 전부 굴리는 건 아니잖아.


예를 들어 클록Clock 이면 미국식으론 클락이잖아. 그런데 나는 그건 또 클락이라고 제대로 발음하는 것이었다.


환장할 것 같았다.



어째서 클락 할때 락은 랙이 아니고 락이 되냐.


헤비메틀 - 헤비메탈이고 록- 락, 이건 다 된다.


심지어 갭Gap 상표는 모두가 갭이라고 읽잖아.


마인드 더 갭 Mind the gap도 마인드 더 갑, 아니잖아. 나도 그렇다고.


뭐가 문제야. 단지 아플이 애플일 뿐이라고.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팠다. 나의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나는 티브이를 보며 조금 머리를 식히려고 했다.


BBC 영어는 좀체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몹시 잘 들리는 발음이 나왔다.


어째서 들리는 거지? 라고 생각해서 보니까, CNN의 자료화면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라고 생각하며


나는 미국 영어가 나올만한 채널을 마구 찾았다. 하지만 영국에서 미국 영어를 들으려면 영화 밖에는 없었다.


마침 티브이에서 하고 있는 영화는 노땡큐힐과 러브 액취증 28일전, 이었다.



하나도 안 들렸다. 줄리아 로보트 발음 빼곤 다 영국 발음이었다.



그때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0082 으로 시작하는 발신인 번호를 보고 국제전화라는 것을 알자마자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다.


- 여보세요? 애인이니?


- 야, 박상! 큰일났어.


- 뭔데?


- 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어.


충격적인 얘기였다. 대학때부터 졸업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해 왔고, 내겐 이 여자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혼자 놔두고 영국에 오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 안 돼! 가지마! 사랑해! 날 버리지 마. 바로 한국에 갈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 발음이 너무 많았다.



- 앤 돼! 개지매! 새랭해! 낼 버리지 매! 배로 핸국에 갤게!


라고 말하면 뭐가 되겠냐.



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었다. 할 말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자친구가 살짝 울면서 조용히 말했다.



- 영국 문화원에서 만난 영국 남자야. 굉장히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우린 끝났어. 미안해. 안녕.



나는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펑, 하고 터지는 것을 느꼈다. 죽을 것만 같은 대단한 폭발력이었다. 절대로 그녀를 보낼 수 없었다. 끊지 않고 있던 그녀가 울먹였다.



- 뭐라고 말 좀 해봐. 나도 그 남자에게 끌린단 말야. 너는 지금 옆에 없잖아.응?



아, 하늘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따귀를 200대 연속으로 맞고 생고구마를 입에 꽂아 넣은 것보다 더 괴로웠다.



나는 이상하게 발음하더라도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만 했다.




- 안 돼. 사랑해! 내가 당장 한국으로 갈게. 그러지 마.



놀랍게도, 내가 말해 놓고 내가 놀랐다. 제대로 된 발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 어? 이젠 나한테 장난 안치네?


- 장난이 아니었어. 몹시 외로웠고 갑자기 내 발음이 그랬어. 어쩔 수 없었다고.


- 외로워서 그런 거야? 미안해.



여자친구는 내가 제대로 발음하기 시작하자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미군에게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어서 미국이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아이인데


내가 미국식으로 발음하자 화가 난 것이었다.



아, 나는 발음이 제대로 되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 할 말이 많아졌다.



- 아아아아. 사랑하는 달링, 아직은 우리가 헤어질 때가 아냐. 내가 잘 할게, 한국에도 곧 갈게.



그때 여동생이 어느새 노크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



- 오빠! 이제 돌아왔구나!


여동생은 다가와 내 엉덩이를 장난스럽게 툭 하고 쳤다.



나는 동생을 따듯이 포옹해 주고 귓속말을 했다.



- 고마워. 희. 라면 좀 끓여 줘.


- 알았어. 끓여줄게. 계속 그렇게만 발음 해.



여동생이 나가자, 가을밤은 더 이상 가을밤이 아니었다. 옆구리의 빗금도 없어지고, 어쩐지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 미안해. 다른 남자고 뭐고 사실이 아니었어. 걱정했었는데 네가 괜찮아졌다니 기뻐.


- 고마워.



여자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까칠한 미국 놈들은 역시 외롭겠군. 그래서 발음이 그 모양인 거야.



동생이 끓인 라면은 역시 맛있었다.


나는 팬태스틱,Fantastic 이 아니라 정확히.



판타스틱! 이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워 주었다.



-끝



아이고, 실컷 쓰고 보니 태그기호가 들어갔다며 등록이 되질 않아 되돌아가기를 했다가 싹 날려 먹었는데,


역시 다시 쓰면 길어지고, 안 웃기는 군요. ㅠㅜ (이넘의 다음 자동저장 기능은 쓰는 내내 방해만 되더니 정작 쓰려니 뜨지도 않고,...쩝)



그렇다면, 4편에서 또 봬요~




92CU
ㅎㅎㅎㅎ 일반 메일도 쓰다가 지워지면 다시 써도 그 느낌이 안 나오죠... 그래서 이해해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러브액취증!! ㅎㅎ
느홍홍홍
빅토리아 베컴이 살찌는 소리.;;;ㅋㅋㅋ
시간통조림
읽는 도중에 batter에서 순간 멈짓 했습니대..
Whosnextplz
ㅋㅋㅋ 넘 잼는 소설이에요~ 사실이 얼마나 가미가 된건지 궁금하군여..^^;;
lovelyulia
- 앤 돼! 개지매! 새랭해! 낼 버리지 매! 배로 핸국에 갤게!----- 너무 웃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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