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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오던 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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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ulwoo 이름으로 검색  (220.♡.249.213) 댓글 0건 조회 2,060회 작성일 10-10-0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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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이 드는 하루였다.





정규수업 첫 날.


어젯밤에 들은 얘기, 교수님이 깐깐하셔서 8시 45분까지는 강의실에 입장을 해야 한다는 말과


교재 첫 Chapter와 부교재, 보조교재를 읽어 와야 한다는 말에


조금이라도 더 읽어가려고 잠이 적었던 탓도 있고, 긴장도 하였고.


아침, 부랴부랴 아이들 아침을 챙긴 후 7시 50분경에 집을 나섰다.


통상 승차 후 20여분이면 학교에 도착하던 기준을 감안하여 조금 여유 있게 나선 셈이다.





디즈버리 도서관 앞.


비는 내리는데 버스가 늦었는지 2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더러는 우산을, 더러는 그냥.


영국 사람들은 줄서기(queue)를 즐긴다고 한다.


또 이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은근히 질서를 잘 지킨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10여분을 기다려서야 차가 왔다.


142번 stage coach. 영국에서 가장 큰 버스회사다.





월요일 아침,


학생 수가 2만 명이 넘는다는 만체스터 대학의 개학날이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닌 게 아니라 학생들로 보이는 승객들이 많았고


타는 사람들마다 일주일짜리 패스를 끊는다.


운전사는 그저 세월아 가라, 이다.


5파운드를 내면 동일구간, 동일회사 버스 일주일분 무한 승차권을 준다.


운전사가 5파운드 권 버튼을 누르면 영수증이 나오고,


이를 챙겨 가로 7센티, 세로 12.5센티 딱딱한 종이로 된 판에 투명 비닐을 입혀 '패스'를 만들어 준다.


아무리 빨라도 30초 이상 걸린다.


비는 내리고, 버스 밖의 사람들은 '그냥' 기다린다.


아무도, '거, 빨리 좀 합시다.' 이럴 법도 한데, 없다.





한술 더 떠서, 이제 기사는 아가씨들과 천연덕스레 농담까지 하면서 하나하나 표를 만들어주고,


더러는 패스를 보여주고 재빠르게 타는 사람들,


1회분 현금을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농담을 하고, 그렇게 '자기 일'을 한다.





게다가 묘한 해프닝도 있다.


한 승객이 패스를 보여주곤 2층으로 올라갔다.


기사는 패스에 적혀있는 유효기일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큰 소리로 다시 보자고 불렀지만 승객은 이를 듣지 못하고 올라가버린 것이다.


기사는 기사실 문을 열고 나와(기사 보호를 위해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문이 달려있다)


2층으로 그 승객을 찾아가 날짜를 확인하고 내려온다.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10여분을 기다려서 탄 버스가 손님이 승차하는 데 또 20분 가까이 걸렸다.


그 사이, 뒤에 따라오던 142번 버스 2대가 앞질러 갔다.





8시 17분정도에 겨우 출발을 했다.


평소 20분이면 가는 거리이니 45분까지, 가까스로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는 금물이었다.


몇몇 정거장을 거칠 때마다 물밀 듯 들어오는 손님들로 차안은 이미 만원이었다.


특히 하일라잇은 휄로우휠드.


학생들이 밀집되어 사는 곳.


입추의 여지없이 밀고 들어온다.


나라도 소리 지르고 싶은 상황. 이제 제발 그만 좀 태웁시다, 라고.


물론 한국에서,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70년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본 상황 중 최악이었다.





해프닝은 계속 된다.


한 승객이 기간이 만료된 패스로 승차하려다가 적발되어 씁쓸하게 웃으면서


호주머니 이 쪽 저 쪽을 뒤져 동전을 털어낸다.


시간이 한 참 걸렸다.


뭐, 그렇다고 어느 한 편이 얼굴을 붉힌다거나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이 차는 2층 버스.


'upper deck seating 53, low deck seating 39, standing 0' 이라는 안내문이 무색한 상황이었다.





나중에 버스 뒷좌석에 탔었던 동료의 얘기를 들으니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시간에 매우 杆기는 듯 연신 창밖과 시계를 교대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던 여자를 보았단다.


인상을 찌뿌리다가, 종래에는 허탈하게 웃는 남자도 보았고.


그만큼 이날 상황은 최악이었던 것이다.





이제 차 안은 초만원.


아직도 연신 기사는 가까이 서 있는 여승객에게 농담을 던지곤 하지만,


본인도 이제는 더 태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감지한 듯 하다.


하지만 저 앞에 보이는 정거장에는 사람들이 무수히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무정차 통과를 결심했나보다.


그 정거장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그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겠다는 손님 한 분이 있어 할 수 없이 정차하자마자


10여명이 재빠르게 올라탄다.


하지만 그 중 절반은 다시 내려야했다.


문을 닫기 위해서.





또 다음 정거장에서 다시 3명의 손님이 내리겠다고 하자 기사는 마침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후 정거장이 아닌 곳에 그들을 내려주는 대단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기사들,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규정승객을 초과해서 태우고,


무정차 통과를 하고,


정거장이 아닌 곳에 정차를 하는 불법을 반복해서 범하는 경우를 처음 보았다.





어떻게 학교에 도착했는지 모를 정도로,


시계보기는 아예 포기하고 사람구경에 심취하여 MBS 건물 앞에 이르니 7분전 9시다.


도중 달려가고 있는 Gram이라는 학생을 만나 함께


단거리 경주를 하듯 강의실로 힘차게 들어서니, 이미 교수는 강의에 열중하고 계셨다.


아니 이럴 수가, 아직 9시가 되지 않았는데.


우리를 보더니





'Good morning! You are late!' 하신다.





참 민망하기 짝이 없다.


200개 가까운 시선이 쏟아진다.


물론 내 뒤에도 10여명의 학생이 들어왔고, 몇몇은 9시가 지나서 들어오기도 했지만,


MBS에서의 내 첫 수업은 이렇게 힘이 들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OTL)








맨날 읽기만해서, 그냥 좀 된 일기장 한 페이집니다.








신시아에염♡
막막 상상이 되요ㅋㅋ 어휴 중학교때 정말 만원버스가 생각 나네요; ㅋㅋ
LazyCat
재밌군요, 생각해보니 정말 여기와서 초조하게 시계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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