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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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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64.141) 댓글 0건 조회 40회 작성일 26-01-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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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31일까지 비자를 받았다. 그렇게 길게 받을 필요는 없었는데 심사관이 그렇게 해줬다. 그 당시에는 대학 입학허가서가 있으면 비자를 길게 내주는 경우가 흔했다.

 

입국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짐을 찾으러 내려왔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영어 사전을 뒤적이고 계셨다. 내가 다가가니 여권을 내밀며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여권을 받아 본 나는 말문이 막혔다. 심사관이 있던 2층을 잠깐 바라보다 말했다. “영주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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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주는 영주권 도장이다.>


여권에 Indefinite Leave to Enter라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홈오피스에서 받는 도장과 공항에서 받는 도장은 문구가 달랐다. 홈오피스에서 받는 영주권은 Indefinite Leave to Remain (ILR) 이고, 공항에서 받는 영주권은 Indefinite Leave to Enter (ILE) 였다. 예전에는 No Time Limit이라는 문구도 함께 있었다.

 

90년대 중후반, IT 인프라가 부족했던 영국이 단기간에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공항에서 IT 관련 전공자에게 영주권 도장을 남발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 아주머니의 경우는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생각했다.

 

8월에 뉴몰든에서 잠깐 통역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이민 상담을 원하는 한국인을 데리고 변호사를 만났을 때 물어보니 이례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항에서 그렇게 영주권 받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그때는 심사관의 재량권이 강했던 시절이고, 지금은 심사관의 재량권이 축소되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있는 사람도 쫓아내려는 판국에 저게 되겠나?

 

화물 카트를 가져와 짐 찾는 것을 도와드렸다. 아주머니는 지하철을 타고 가신다고 했다. 짐도 많은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괜찮을까 걱정됐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씁쓸하게 돌아섰다.

 

나는 이스트본으로 가기 위해 한국인 미니캡을 예약했었다. 미니캡 사장님을 만나 밖에 나와보니 어두웠다. 6~7시쯤 됐었을 것이다.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계속 그 아주머니가 눈에 밟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에 짐을 싣고 카트를 보관 구역에 가져다 놓는데 저 멀리 공항 밖에서 아주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하철 타러 가는 길을 모르시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거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미니캡 사장님께 뉴몰든에 갔다가 공항으로 돌아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같이 타고 가고 싶었지만 짐도 많고, 내가 너무 커서 아이들과 함께 타기 어려웠다. 잠깐 생각에 잠기시더니 아무리 늦어도 2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다고 하셨다. 택시비는 40파운드였다. 가지고 있던 던힐 담배 두 보루를 건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양담배 한 보루를 20파운드, 국산 담배는 15~18파운드로 계산해 거래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사코 사양하는 아주머니와 아이들을 억지로 차에 태웠다. 아주머니께 내가 수험생 때 쓰던 영어 노트를 드렸다. 어설픈 영어 교재보다 내가 만든 노트가 더 좋을 것이다. 미니캡 사장님께 늦게 오셔도 좋으니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주십사 담배 한 보루를 더 건넸다. 그냥 현금으로 드렸어야 했다. 영국은 담배가 비싸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해 실수했다.

 

짐을 가지고 입국장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이스트본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숙집 주인에게 전화해 늦을 거라 미리 말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진다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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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가로등이 거의 없었다.>
 

이스트본 가는 길에 보니 영국은 고속도로와 국도에 가로등이 거의 없었다. 상향등을 켜고 달리다가 반대편에 차가 오면 하향등으로 바꾸면서 달렸다. 자정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여주인이 자다 일어난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주었다. 너무 미안했다. 방을 안내받고, 씻으려고 화장실에 갔는데 바닥에 하수구가 없었다. 욕조에 걸터앉아 발을 씻고 세수하고 나왔다. 샤워하고 싶었지만 모두 잠든 시간에 민폐 같아서 참았다.

 

방에 침대가 두 개 있었다. 침대 사이에 작은 협탁이 있었는데 그 위에 작은 자명종 시계가 있었다. 한국에서 깜빡하고 시계를 안 가져왔다. 시계를 내 쪽으로 돌려놓고 잠들었다. 고단한 여정이었다. 이제 행복하고 즐거운 유학 생활이 되길 고대했지만, 한동안 어려움이 계속됐다. 영국에 도착하고 2주 동안 적응을 전혀 못 해 유학을 포기하려 했다. 부끄럽지만 눈물까지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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