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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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화요일
매일 아침 러닝을 시작했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와 달렸다. 리젠트 파크로 들어가 LBS 캠퍼스 앞으로 가로질러 돌아오는 코스였다. 대충 6.5km 정도였는데, 35분~40분 정도 걸렸다. 집으로 돌아와 밥 먹고, 씻고 나갈 채비를 하면 시간이 8시 40분 정도 됐다. 학교 개강 전이라 오전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UCL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싶었는데 아직 LSE 학생증을 만들지 못해 이용하지 못했다. 국제 학생증이 있었지만, 그걸로는 이용할 수 없었다. 국제 학생증으로 도서관 이용은 가능했지만, 그 외 시설은 이용할 수 없었다. 학생증 만들 생각으로 학교에 갔다. 9월 17일부터 학생증을 만들 수 있었는데, 내가 조금 일찍 갔다. 학비가 완납되어 있었기에 학생증 발급이 가능했다. 학생증 만들고, UCL 체육관에 등록했다. 런던대에 들러 연합학교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나니 어느새 오후 1시가 다 됐다.
서점에 들러 영국 여행 책자를 사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데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곧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 시선이 카페 벽에 붙어 있는 작은 TV로 쏠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무음 TV 화면에 빌딩이 하나 보이고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빌딩이 어디선가 한번 본듯했다. 자막이 떴는데 쌍둥이 빌딩이었다. 카페 직원이 무음을 해제하자 흥분한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생자 3천명, 부상자 6천명에 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뉴욕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 46분, 런던 시각으로 오후 1시 46분에 1차 충돌이 있었다. 아직 사고인지 테러인지 정보가 없었다. 뉴스에는 그저 여객기 한 대가 빌딩에 충돌했다는 내용만 반복되고 있었다. 테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객기를 납치해 가미카제식으로 들이박을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15분 뒤, 2차 충돌이 일어났다. 그제서야 테러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공포는 전염성이 높다. 런던에서 일어난 사건도 아닌데 사람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두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나도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뉴욕에 한 살 많은 사촌 누나가 살고 있었다. 뉴욕 명문고 중 하나인 브롱크스 과학고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누나에게 전화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다. 수차례 통화 시도 끝에 연결이 됐는데, 뉴욕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단다. 전국에 휴교령이 내려져서 급히 학생들을 내보내느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단다. 누나에게 당분간 사람 많은 곳엔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펜타곤에도 충돌이 있었다. 잠시 뒤에 또 다른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탑승객들이 테러범과 싸우는 와중에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웠다.
미국으로 유학 간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친구들은 무사했다. 미국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2~3일씩 학교 일정을 미뤘고, 초중고는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을 휴교한 곳도 있었다. 영국의 학교는 일정에 변동이 없었다. 한동안 사람 많은 곳엔 가지 않았다. 집이나 도서관 등 테러와 연관이 낮은 장소에만 머물렀다. 집에서 책 읽다 사람이 없는 밤에 UCL 체육관에서 조용히 운동하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9월 17일 월요일, 예비과정이 시작됐다. Introductory Course in Mathematics and Statistics라고 하는데, 줄여서 수학 캠프라고(Maths Camp) 불렀다. 수학과 통계가 주된 교육 과정이었다. 교육 수준은 충격적이게도 학부생 1학년 수준이었다. 행렬, 미적분, 벡터는 고교 수준이었다. 기초 선형대수, 해석학, 경제학 응용수학, 확률과 통계는 학부 1학년 수준인데, 전체적으로 수준이 낮았다.
통계 프로그램도 가르친다. 이건 나중에 워크숍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치지만, 수학 캠프에서는 계량/통계 인트로 세션에서 기초적인 운용법을 가르쳤다. STATA라는 프로그램인데 데이터 처리, 시각화, 통계를 분석할 때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학부생일 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엑셀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석사과정부터는 필수 프로그램이다. 에세이 쓰는 법을 석사생이 모를 수가 없는데 그것도 가르쳤다.
수학은 원래 잘했다. 스타타 프로그램도 학부생일 때 일찍 배워뒀다. 학부 졸업생이 에세이 쓸 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첫날부터 혼란스러웠다. 예비과정 강의는 교수와 박사생이 맡고 있었다. 교수에게 묻기는 좀 그렇고, 만만한 게 박사생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박사생을 불러 세웠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이 과정을 진행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나름 정중하게 물었다. 그 박사생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 줬다.
수학 캠프의 목적은,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게 해주어 보충 수업 등으로 부족함을 채우게 하려는 목적이다. 학부 전공자라도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전공을 전환하는 비전공자, 학부 졸업한 지 오래된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 사람들이 수학 캠프에 함께 참여한다.
한국인에게 생소한 과정이 있는데, 예비 석사과정에 해당하는 Postgraduate Diploma (PGDip)다. 공식 문서에는 Diploma in Economics라고 적시하는데, 전공 전환자나 학부 졸업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여기서 시작한다. 1년간 예비 석사과정을 거치고 본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비 석사과정이 필수는 아니다. 조건만 갖추면 석사과정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유학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LSE 정도의 명문대면 강의실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지식이 쌓일지도 모른다는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첫날부터 환상이 깨졌다. 어느 정도 긴장감도 있었는데, 그것도 사라졌다. 김빠진 콜라 마신 기분이었다. 복도에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돌아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내 모교 동기 놈이었다.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동기 놈 뒤에 선배가 나타나고, 그 뒤에 후배 녀석들 5명이 더 나타났다. 외국에서 만나서일까? 어찌나 반갑던지 웃음이 나왔다. 진짜 웃긴 건 한국에서 우린 서로 안 친했다는 것이다. 선후배와 OT, MT를 함께 했던 짧은 추억이 있긴 한데, 그게 다였다. 노느라 바쁘고, 공부하느라 바빠서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다.
먼 이국땅에서 동문을 만난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운 일인 줄 몰랐다. 디플로마에 선배 16명이 더 있었다. 01년 LSE 경제학과에 한국인은 총 39명이었다. 석사 11명 중 8명, 디플로마 28명 중 16명이 동문이었다. 디플로마 28명 중에는 정부 기관에서 유학 보내준 공무원이 16명이나 있었다. 학부 졸업한 지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라 디플로마에서 시작했다. 첫날부터 김빠졌는데, 갑자기 재밌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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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님의 댓글
저는 9.11테러 당시 군대에서 불침번 서려고 새벽에 깨서 행정반에 들어갔더니 당직사관이랑 당직하사가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더라구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상황이라는 말에 혹시라도 내 군생활에 영향 주는일 없을까 하는 불안감이 살짝 스쳤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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