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16) > 영국일기

본문 바로가기

 <  영국이야기  <  영국일기

옛날 일기(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0.♡.64.141) 댓글 0건 조회 16회 작성일 26-02-26 18:42

본문

치안법원에(Magistrates’ Court) 오전 9시까지 오라고 해서 일찍 갔더니 대기해야 했다. 시급 카운트는 9시부터다. 오래 기다려도 돈이 나오니까 불만은 없었다. 9시 반쯤 시작됐나? 혐의를 인정하는 피고인은 선서 없이 바로 판결하는데, 혐의를 인정 안 하거나, 법정에서 다툼이 있으면 피고인이 증언하기 전에 선서한다. 나는 통역으로서 무조건 선서해야 했다.

 

종교가 있냐고 묻길래 잠깐 망설였다. 원래 종교 안 믿는데 전도사 형님에 대한 의리로 그냥 기독교라 답했다. 종교인 선서를(Oath) 하는데, 성경에 손 올리고 읽어야 할 문구를 읊었다.

 

“I swear by Almighty God that I will faithfully and accurately interpret the evidence and matters in this case.”

 

재판을 기다리는 피고인은 한국인 6명과 조선족 1명이었다. 모두 음주운전이었다. 조선족은 중국 국적인데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다. 재판이 시작됐다. 첫 피고인이 조선족 아저씨였다. 혐의는 인정하는데 할 말이 있다면서 선서하고 변명을 시작했다.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해놓고선 시작부터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혐의는 무면허 및 음주운전이었다.

 

처음부터 면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1년 당시 한국과 중국 면허는 영국 도착 후 12개월까지만 국제운전면허로 운전할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운전하고 싶으면 영국 면허를 취득해야 했다. 나도 이스트본에서 미리 면허를 땄다. 당시 이스트본이 인구 소멸지역이어서 그 동네에서 응시하면 6주 만에 면허 취득이 가능했다. 사람도 없고, 차도 없어서 주행 시험 합격률이 매우 높은 동네였다.

 

조선족 아저씨는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영어를 못해도 통역을 신청하면 되는데, 통역이 있어도 문제를 못 맞히면 별수 없다. 아저씨의 주장은 자기 탈북자인데 한 번만 봐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 당시 영국에서 탈북자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년 정도 더 지난 뒤에 난민으로 인정되어 영국으로 올 수 있었고, 그전에는 인정을 못 받아서 영국에 올 수 없었다. 탈북자행세 하려고 한국어 통역을 요청한 것 같았다.

 

면허증이 중국 면허인데 탈북자가 무슨 수로 취득했냐는 질문에 횡설수설했다. 급기야 중국이 탈북자에게 중국 국적을 줘서 취득할 수 있었다는 말을 했는데, 이러면 완전 나가리다. 중국이 북으로 강제 송환을 안 하고 국적을 줬다는 소리를 누가 믿겠나? 법정에서 거짓말하면 불이익이 따를 수 있는데 왜 저러는지 궁금했다.

 

그 아저씨는 식자재 납품 업자였다. 밴에 식자재를 가득 싣고, 음식점에 납품하고 있었다. 운전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보니 운전만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저러는 것이었다. 판사가 너그럽게 거짓말을 이해해 주더라도 무면허로 돌아다니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 아저씨 소유 차량이 두 대였다. 영업용 밴과 BMW였다. 술 마시고 BMW 몰다 적발된 것이었다. 벌금 2천 파운드 그리고 차량 두 대 모두 압류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금과 함께 운전면허 정지 12개월 처분을 받았는데, 조선족 아저씨는 판사가 자비를 베풀었다. 운전면허 취득 기회까지 막지는 않았다. 면허 취득 후 차량을 찾아가면 되는데, 그때까지 압류된 차량의 주차비는 계속 청구된다.

 

다른 사람들은 변명을 안 해서 빠르게 끝났다. 피고인의 경제력과 음주 수치에 따라 벌금을 부과했다. 어학연수 온 학생이 한 명 끼어 있었는데, 2천 파운드짜리 중고차를 타고 다녔다. 판사가 경제력 없는 학생에게 벌금 2천 파운드와 면허 정지 3년을 선고했다. 차 팔아서 벌금 내고, 어학연수 하는 동안 운전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조선족 아저씨 때문에 재판이 길어졌지만 그래도 2시간 안에 끝났다. 통역비는 교통비 포함 92파운드였다. 이래서 전문가들은 공공 서비스 통역을 하지 않는다. 최저 시급으로 주 20시간 일하는 것보다는 많이 받으니까 나 같은 학생에겐 좋을지 몰라도 통역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시간 낭비였다

 

장학금이 지급됐다고 이메일이 왔다. 정식 장학금은 10월부터 다음 해 8월까지 지급되는데, 석사 예비 과정이 9월부터 시작이라 8월에 초기 정착금이 우선 지급됐다. 8월에 지급되는 정착금에는 숙식비, 생활비가 따로 없었다. 자비로 체류해야 하는데, 정착금을 많이 줘서 내 돈 쓸 일은 없었다.

 

왕복 항공료 800파운드, 정착금 500파운드, 택시비 40파운드, 환영한다고 돈을 주는데 120파운드였나? 제법 많이 지급됐다. 주한영국대사관에서 현금 카드를 지급 받아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처럼 먼저 도착해 은행 계좌를 오픈한 사람들은 계좌로 넣어줬다. 대사관에서 별도의 비자를 받아서 나와야 하는데, 먼저 출발한 사람들은 귀국 후 대사관에 방문해 귀국 보고를 해야 했다. 그 장학금이 원래 학업 마치는 즉시 귀국하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플랏만 구하면 되는데 또 얼마나 돌아다녀야 할지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하루 정도는 쉬고 싶었다. 그럴 여유는 없었는데, 이스트본에서 매일 놀다가 갑자기 생활 패턴이 바뀌니까 답답했다. 코리아 푸드 옆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 갔다. 골프채는 이스트본에 있을 때 중고 샵에서 샀다. 한국에서나 비싼 운동이고, 영국에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이 골프였다. 자판기에 빈 바구니를 넣고 2파운드를 투입하면 골프공 50개 정도가 바구니에 담겨 나왔다.

 

자리 잡고 연습하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아저씨가 인사하며 옆자리로 오셨다. 예사롭지 않은 배둘레햄이 이목을 끌었다. 공을 앞에 두고 살짝 숙인 고개에서 수상함이 느껴졌다. 골프채를 쥔 그립에서 뭔가를 느끼고 급히 말리려던 찰나, 힘찬 풀스윙과 함께 골프채가 날아갔다. 처음이면 가르쳐 달라고 하시지...

 

천주교 신부님이셨다. 신부님 이력이 흥미로웠다. 바티칸에 파견되어 5년간 구마사제를 돕는 보조 사제로 사역하시다 오셨다. 신부님 말씀으로는 유럽에 귀신이 그렇게 많단다. 5년 동안 하루도 안 쉬고 구마 의식을 치르셨다는데 무신론자인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신부님께 정이 갔다. 한때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었을 때 내 캐릭명은 절간 턴 수녀였다. 일요일에 성당에 나가기로 약속했다.


추천1 비추천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279건 1 페이지
영국일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열람중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 1 2026-02-26
2278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 1 2026-02-25
2277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 2 2026-02-23
2276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3 2 2026-02-22
2275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8 2 2026-02-05
2274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1 2 2026-02-04
2273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7 2 2026-02-03
2272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91 2 2026-02-02
2271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9 1 2026-02-01
2270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2 1 2026-02-01
2269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7 1 2026-01-30
2268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4 1 2026-01-29
2267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0 1 2026-01-28
2266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4 1 2026-01-27
2265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4 1 2026-01-27
2264
옛날 일기 댓글4
no_profile Dave072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6 1 2026-01-27
2263 no_profile 자몽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66 0 2025-09-07
2262 no_profile 소월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77 1 2024-05-04
2261 no_profile 소월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754 0 2024-04-26
2260 no_profile 그런가보다하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69 1 2024-04-20
게시물 검색
내가 쓴 글 보기
영국이야기
공지사항
이런저런이야기
영국일기
영국사진앨범
영사 사진전 수상작
요리/맛집/여행
영사칼럼
영사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