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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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 일찍 플랏 구하러 캠든 타운으로 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와보니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빠르게 걷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대부분 관광객이었다. 가다 보니 작은 교각이 나왔다. 교각 위가 철길 같았는데 페인트로 CAMDEN LOCK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교각을 기준으로 좌측이 캠든 록 시장이고 우측이 캠든 시장 홀리 워프였다. 부동산을 안 가고 시장으로 빠졌다. 잠깐 구경하고 가려 했는데 헤어나오질 못했다.
캠든 시장에 푹 빠져버렸다. 난 이런 곳을 좋아한다. 사람 사는 냄새, 흥이 넘치는 곳, 북적이는 인파 속을 걸을 때 왠지 모르게 즐거웠다. 거리 곳곳에 중세시대 복장을 한 뚱뚱한 아저씨들이 보였다. 마치 온라인 게임 NPC같아 웃겼다. 코크니로 뭐라 외쳐대는데,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캠든에서 처음으로 코크니를 들어봤다. 이스트본 밴드 친구들은 코크니를 안 써서 몰랐는데, 코크니는 진짜 현지인이 아니면 못 알아듣는 언어였다.
관광 보트에(Narrowboat) 올라타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미 늦었다. 보트는 리젠트 운하를 따라 캠든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 동네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여기서 살다가는 공부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든 마켓은 주말에 스트레스 풀러 오면 좋을 것 같은 곳이다. 주거지는 캠든 마켓이 안 보이는 남쪽에서 구하기로 했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 다행이었다. 캠든 타운역에 다시 돌아와 마켓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걸었다. Mornington, 이 동네도 위치는 정말 좋았다. 모닝턴 지하철역이 가까워 학교 가기에도 좋고, 리젠트 파크도 가까워 조깅하기에도 좋았다. 산책하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존이라 임대료가 저렴하리라 생각했는데 1존과 차이가 없었다. 부동산 업자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캠든 행정구역에서 프리미엄 붙은 동네라 1존과 차이가 없단다.
1베드 플랏이 800~900파운드, 2베드가 1000~1200파운드로 뱅크사이드에서 봤던 아파트와 차이가 없었다. 뱅크사이드는 학교에서 가깝고, 강변이라 조깅, 산책하기에도 좋았다. 테이트 모던 뿐만 아니라, 문화생활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서 힐링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모닝턴은 바로 옆에 리젠트 파크도 있고, 캠든 마켓도 가까웠다. 학교에서 거리는 멀지만, 지하철역이 가까워 학교까지 10분이 안 걸렸다. 선택 장애가 왔다.
1베드 혼자 살기에는 임대료가 부담스럽고, 쉐어는 2베드가 더 나은데 어떡할지 고민됐다. 취브닝에서 준 정착금 500파운드가 주택 임대 보증금 명목으로 주는 거라는데 그러면 월 500파운드까지는 월세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지원받을 수 있으면 1베드 혼자 들어가도 괜찮고, 2베드도 부담이 없었다. 취브닝 사무국에 전화했더니 오후 6시가 넘어서 통화할 수 없었다. 내일 통화하기로 하고 동생 만나 저녁 먹으러 킹스크로스로 갔다.
시내에서의 첫 외식이었다. 이스트본에서 외식하면 보통 6~8파운드였는데, 런던은 최저 9파운드부터 시작이었다. 메뉴를 보니 제대로 먹으려면 팁 포함 12파운드 정도 하는 것 같다. 뉴몰든이 이스트본과 비슷했다. 함지박에서 김치볶음밥 4.5파운드, 찌개류 5~6파운드였다. 국일관이나 아사달 같은 곳은 7~8파운드 정도 했다. 한국 식당은 팁을 주지 않아도 뭐라 안 해서 편했다.
에릭이 금요일에 알바 같이 뛰자고 꼬드겼다. 이삿짐 알바였다. 하기 싫었다. 내가 없으면 자기 혼자 이삿짐 날라야 하는데 안 불쌍하냐고 애원했다. 알바비는 50파운드였다. 04카페에서 같이 할 사람 찾으면 금방 찾을 것 같은데 굳이 나랑 하겠고...금요일 아침 일찍 임페리얼 컬리지 인근에서 만났다. 켄싱턴 가든을 끼고 있는 동네였다. 한국에서 오는 이삿짐을 나르는 일이었다.
트럭이 도착하고 이삿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2베드 플랏이었는데 가전 제품은 밥솥 하나였다. 나머지는 모두 가구였다. 침대, 소파, 책상, 식탁 등 얼마 없었다. 이민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30대로 보이는 남자와 아기를 등에 업은 아기 엄마가 옆에서 거들고 있었다. 박사과정 유학생 같았다. 자비로 유학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왠지 이 사람 장학금 받고 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렌트비가 궁금했다. 내가 원래 이런 사적인 걸 물어보는 사람이 아닌데, 나도 집을 구하는 처지다 보니 너무 궁금했다.
솔직하게 말하고 물어봤다. 나도 집구하고 있는데 이런 집은 렌트비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대수롭지 않게 답해줬다. 장학금으로 85% 지원받고, 자비 부담 15%인데 월 150파운드를 낸다고 했다. 나도 일주일 동안 집 구하러 다닌다고 런던 시내를 돌았는데 이 집은 그런 가격에 나오기 어려웠다. 켄싱턴 가든을 끼고 있는 2베드 플랏인데 월 1000파운드가 말이 되나? 잠깐 생각한다고 멍하니 서 있으니 그분이 웃으면서 말해주길 이 집은 대학이 리스해서 임대하는 블록 리스라고 말해줬다.
그 집 좌우로 블록 끝까지 있는 집들이 모두 런던대가 리스한 집이었다. 가구가 들어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의 월세가 150파운드 정도 차이가 있었는데, 그분은 가구 없는 집을 택한 것이었다. 블록 리스를 그날 처음 알았다. 그 시절에는 임페리얼 컬리지도 런던대 소속이었다. 런던대에서 독립한 지금은 아마 블록 리스 혜택이 없을 것 같다. 자체적으로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세 가구 이사가 그날 할 일이었다. 두 가구는 유학생이어서 짐이 없었고, 한 가구는 사업하는 사람이라는데 이민 수준으로 짐이 많았다. 다행히 그 사람이 데려온 회사 직원들까지 거들어서 금방 끝났다. 일 마치고 보니 오후 2시였다. LSE 학교 근처에도 왠지 블록 리스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잊고 있던 LSE 숙소 상담 직원이 생각났다. 지갑에서 명함을 찾아 전화했더니 석박사 전용 블록 리스가 있었다. 입주 가능한 플랏 중에 추천해 줄 수 있는 플랏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상담 직원이 알려준 주소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주소만 가지고 찾아가기엔 무리였다. 스마트 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도도 없었다. 영국 택시 기사는 주소만 듣고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블랙캡을 처음 타봤는데 좌석이 굉장히 넓었다. 택시요금 미터기 옆에 팁까지 표시되는데 신박했다.
댓글목록
영국보틀님의 댓글
캠든마켓이 재정비 되기전에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ㅎ 요즘에 비해서는 집값이나 물가가 정말 쌌군요. 환율은 비슷한데..
Dave0723님의 댓글의 댓글
사진 올리면 글이 짤려서 안 올렸습니다. 캠든이 워낙 유명해서 옛날 사진도 인터넷에 많아요.지금도 좋은 것 같지만 옛날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겨서 너무 좋았습니다. 집값은 계산해 보니까 예전에 비해 4배 가까이 올랐네요 전체적으로...제가 살았던 플랏이 월 600파운드였는데 지금 보니까 월 2400파운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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