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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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민박집에서 나왔다. 내 방에도 고가품이 많았다. 집에 도둑놈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집 나오기 전 인터넷으로 인근 호텔부터 찾았다. 앞으로는 호텔만 이용할 생각이었다. 톨워스에 Travel Inn(현 Premier Inn)이라고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1박 15파운드(지금은 73파운드), 2주 전에 예약하면 11파운드였다. 잠깐 머물기엔 상당히 좋은 호텔이었다.
마지막 통역 알바가 있었다. 행정 통역이었다. 킹스턴 사회복지사와 함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임대 아파트로 갔다. 이번에도 관광비자로 들어와 눌러앉으려던 부부였다. 또 임산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집 나가고 연락이 끊겼다. 주거지는 킹스턴에서 운영하는 기초수급자 전용 아파트였는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어보니 남편이 어디선가 저렴한 숙소를 구했다며 들어와 보니 여기였단다. 기존에 살고 있던 수급자가 소득이 생기면서 나가게 되니까, 나가기 전에 사기 친 것이었다.
영어도 못 하는데 돈 없이 영국 오면 부자 된다고 소문이라도 났나? 왜들 저렇게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임산부가 며칠을 굶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상식대로면 인도주의 차원에서 치료해주고 추방하거나, 출산 후 추방 절차를 진행한다. 상식이 안 통하던 시기라서 체류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도움받을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식료품을 잔뜩 사 들고 왔다.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500파운드 상당의 테스코 쿠폰과 카드를 주었다. NHS 등록을 위해 임산부의 여권을 가지고 나왔다. 출산까지는 도와줄 모양이다. 경찰에 남편의 행방을 의뢰했는데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임신한 자기 와이프 폭행하고, 쌍욕 하는 놈도 있는데 자발적 가출일 수도 있다. 나도 곧 뉴몰든을 떠난다. 더는 통역을 못 하니 한국 대사관이나 한인회에 의뢰하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통역사 풀에서 내 정보도 삭제했다.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무거워 교회로 차를 돌렸다. 큰 교회라 재정도 넉넉해서 성당보다 나을 것 같았다. 목사님을 찾을 생각이었는데, 목사님이 안 계시고 사모님이 계셨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전도사 형님한테 들었는데, 사모님이 한국에서 의사셨단다. 학습 능력이 안 죽고 살아있었는지 영어를 제법 잘하셨다. 사모님께 이야기했더니 도와주시겠다고 나섰다. 자택에 먼저 들러 먹거리와 취사도구를 챙기셨다. 그사이 목사님과 전도사 형님도 오셔서 함께 임산부 집으로 갔다. 집안 위생이 너무 불결해서 사모님이 임산부를 거기 둘 수 없다고 자택으로 데리고 가셨다.
담당 복지사 이름과 연락처를 드렸다. 지자체와 교회가 도우면 한결 수월할 것이다. 전직 의사가 옆에 있으니 의료 통역도 문제없을 것이다. 나중에 전도사 형님한테 들었는데, 그 임산부에게 남편 찾을 때까지 머물 수 있는 단기 체류 비자를 주었단다. 임시 거처도 마련해 주었는데, 그냥 목사님 댁에 계속 머물렀다.

<Fairoaks Airport, 시설은 낡았지만 회원이 많아 활기찬 클럽이었다.>
뉴몰든에서 30분 거리에 Fairoaks Airport가 있는데, 그곳에 비행 클럽이 있었다. 뉴몰든에서 가깝다 보니 한국인이 가장 많은 클럽이기도 했다. 클럽 가입비와 연회비가 브라이턴에 비해 비쌌는데, 그래도 학생이라 우대받아서 50파운드만 냈다. 확실히 런던 근교는 지방 도시보다 비싼 것 같다. 비행기 렌트비도 기름값 포함 시간당 40파운드였는데, 한번 비행할 때 2시간씩 타니까, 비싸서 자주 타지는 못할 것 같다. 기분 전환할 겸, 비행기 타고 브라이턴 클럽으로 날아갔다. 오랜만에 보는 클럽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줘서 기분 좋았다. 회원들과 오랜만에 수다 떨다 돌아왔다.
이사할 준비 한다고 크로이던에 있는 이케아에 갔다. 영미권 사람들이 참 짓궂은 게, 스웨덴에서 이케아라 불러달라는데 무시하고 자기들 발음인 아이키아라고 불렀다. 요즘에도 그렇게 부르나? 2004년 12월에 경제사절단 데리고 유럽 한 바퀴 돌 때, 이케아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스웨덴 본사에 방문해 한국 시장에 진출하라고 꼬드겨서 데려왔다. 영국의 테스코도 그때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삼성과 합작해서 홈플러스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이케아 가는 길에 대규모 가구 물류단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Car Boot Sale이 열렸다. 보통 일요일에 열리는데, 가끔 평일에 열리기도 한다. 대단지여서 주차장 규모가 굉장했다. 사람들도 많았는데, 물건들 구경하다 컴퓨터 부품에 관심이 생겼다. 노트북이 있긴 했지만, 발열이 심해서 데스크톱이 있었으면 했다. 부품들을 모아보니 600파운드 정도 했다. 싸구려 부품이 아니라 싸게 구매한 것이다. 정가 주고 구매했으면 아마 1500파운드가 훨씬 넘었을 것이다.
그 당시 세계의 공장이라 불렸던 중국에서, 근로자들이 부품을 빼돌려 집에서 조립해 판매했다. 그렇게 판매된 완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유통됐다. 이런 건 운 나쁘면 불량품이 걸릴 수도 있어서 신중하게 구매해야 했다. 복합기도 사고, 이것저것 사다 보니 돈을 많이 썼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라 충동 구매가 많았다. 다시 이케아로 가서 거실에 놔둘 화분을 여러 개 샀다. 커튼과 러그도 사고 이것저것 쇼핑하다 보니 차에 짐이 한가득이었다. 이케아가 인기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핫도그였다. 그게 50펜스였나? 더 저렴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일단 샀다. 맛없었다.
2001년 9월 1일 토요일,
시내로 이사했다. 기분이 좋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청소부터 꼼꼼하게 했다. 전용 주차장이 있어서 거주자 우선 주차권은 구매 안 해도 됐는데, 혹시 몰라서 구매했다. 주차권은 1년 단위로만 구매할 수 있는데, 경차와 소형차가 70파운드였다. 내 차는 커서 1년 90파운드였다. Congestion Charge가 없던 시절이라 시내 교통이 혼잡해서 평일 낮에는 차를 탄 적이 거의 없다. 9월 중순에 예비 과정이 시작했고, 10월 1일에 정식으로 개강했는데, 그때까지만 차를 탔고 이후에는 버스 타고 다녔다.


<추억의 교통 카드>
버스 요금은 1파운드였다. 오이스터 카드라는 것은 없었다. 세이버 티켓이라고 한 장씩 찢어서 사용하는 티켓인데, 사용 규정이 좀 웃겼다. 기사가 보는 앞에서 찢어야 했다. 크게 저렴하지도 않고 불편해서 지하철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Travelcard를 이용했다. 두꺼운 분홍색 종이 카드였다. 세이버 티켓과 요금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버스는 제한이 없었고, 지하철은 1-2존만 이용할 수 있는 카드였는데, 학생 할인으로 월 43파운드였다. 장학금 지급 내역에 교통비 월 60파운드가 있어서 굳이 요금 비교를 할 필요는 없었다.
런던에서의 유학 생활은 나름 즐거웠다. 공부가 즐거울 일은 없었다. 학업량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그래도 생활은 즐거웠다.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런던에 놀러갈 때 저 분홍색 One day travel card 끊어서 갔었는데 ㅎ
기차+지하철+버스 다 이용할 수 있어서 편리했죠.
Dave0723님의 댓글의 댓글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카드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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