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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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캠프 집어치우고 여행이나 갈까 고민했다. 잉글랜드 북부 지역과 스코틀랜드로 2주 정도 여행하다 돌아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포기했다. 선배들 때문이었다. 후배들은 일찍 유학을 계획해서 어학에 대한 준비가 잘되어있었다. 디플로마에 있는 선배들은 갑작스럽게 결정된 유학이라 어학연수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LSE 석사 입학 조건은 아이엘츠 최소 7점, 권장 7.5점이고, 과목별 7점 이상을 요구했다. 점수가 부족한 사람들은 LSE 어학센터에서 어학연수 후 디플로마에서 시작하는 조건으로 입학했다. 선배들이 모두 기혼자라 가족을 데려와야 했다. 혼자 먼저 와서 영어 공부를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가족이 모두 도착한 지금은 영어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선배들을 도와야 했다.

<80년대 영어 교재>
7,80년대에 공부했던 사람들이라 어학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 그 시절에 영어를 얼마나 잘 가르쳤고, 얼마나 잘 배웠겠나? 학교에선 말도 안 되는 시험용 영어를 가르쳤지, 말하기를 가르친 적은 없었다. 영어 선생들 발음부터가 개판이었는데 누가 누굴 가르치겠나? 그렇다 보니 발성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말하기 규칙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외래어 표기는 국립국어원에서 로마자 표기법을 기준으로 정했는데, 영어 공부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었다.
미국식 영어를 교과서로 채택해, 영국식 발음과 혼용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콜리지(컬리지)와 칼리지,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국이 ‘아‘ 발음이 강하다고 칼리지가 맞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발성도 모르고, 규칙도 모르니까 로마자 표기법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로마자 표기법은 말 그대로 표기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로마자 표기법, 문어체에만 사용한다.>
문자 메시지, 이메일, 게시판 글, 워드 작성 등, 글을 쓸 때 로마자 표기법을 사용하고, 말할 때는 표기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 문어체와 구어체를 글쓰기에 함께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문어체를 말할 때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패밀리, 코벤트가든처럼 로마자 표기법을 구어체에 사용하다 보니 어느새 ‘로마자 표기법은 한국인 발음’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것을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서 개그 소재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한국인은 잘못된 영어 교육의 피해자다. 어떤 언어든, 읽는 방법만 알면 언어 습득이 빨라진다. 한국의 영어 교육에선 기초적인 것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유무성음과 슈와 같은 기초적인 발성과 연음 같은 최소한의 규칙만 가르쳐줬어도 영어 습득이 훨씬 빨랐을 것이다.
단어 끝에 ‘s’로 끝나는 단어는 보통 무성음이다. 발음기호 ‘z’로 표기되어 있어도 ‘스’로 발음한다. 템스, 레인스 파크, 히스(his), 해스(has) 등 무성음은 성대의 떨림이 없기 때문에 ‘즈’ 발음이 나오지 않는다. dogs를 독즈라고 안읽고, 독스라고 읽고, years를 이어즈라고 안읽고, 이어스라고 읽는다. 소리내기 편한 무성음이기 때문이다. 유성음 ‘z’가 얼마나 어색하고 소리내기 귀찮은 철자인지는 설명 안 해도 알지 않은가?

<연음과 슈와는 기본이면서 필수다.>
런든 런던, 캠든 캠던, 브라이튼 브라이턴, 에버튼 에버턴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슈와를 알면 고민 안 한다. 슈와는 강세가 없는 모음에서 발생하고, ‘으’와 ‘어’ 사이의 약한 소리라고 하는데, 저따위로 설명하면 어느 세월에 익히겠나?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개강 2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속성으로 빠르게 가르쳐야 했다. 슈와는 강세가 없는 모음에서 발생한다. 강세가 없으니 소리가 약하다. 소리가 약하다 보니 잘 안 들리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런 규칙이 생겼다. “자음과 자음 사이에 있는 모음은 소리가 먹힌다.“ 소리가 먹히니까 거의 안 들린다.
Londn, Brightn, Camdn, Covnt, New maldn, 펜슬, 캔슬, 카운슬 이런 식이다. 슈와를 잘 모를 때는 소리를 먹어버리는 것이 편하다. 제대로 된 발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제대로 된 슈와는 런던, 브라이턴, 캠던, 에버턴, 펜설, 캔설, 카운설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 ‘으’와 ‘어’ 사이의 소리니까 그렇게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About, Again, Banana처럼 자음과 자음 사이에 갇히지 않은 모음도 있는데, 그때는 소리가 먹히지 않는다. 그런 경우 제대로 발음해 줘야 하는데, 잘 모를 때는 ‘어’ 소리가 잘 나오는 편이다.
에딘버러가 특이한데, ‘딘’에 슈와가 없고, '버러'에 슈와가 있어서 에딘브러나 에딘버러로 들린다. 슈와의 특징은 하나의 음절 안에서만 발생하는데, Edinburgh 여기서 Ed가 하나의 음절이고, in은 별개의 음절이다. 갇힌 모음이 아니어서 소리가 먹히지 않는데, 연음 규칙으로 ‘딘’ 발음이 난다. 그 동네 사람들이 ‘에딘브러‘로 불러달래서 구어체에선 그렇게 부르지만, 문어체에선 편한 데로 써도 된다. 슈와 발음과 연음 규칙이 영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시험용 문법 따윈 갖다 버리고, 듣고 말하기에 당장 도움 되는 규칙들만 하루에 한두 개씩, 2주간 2~30개 정도 가르쳤다.

<강의실 크기는 다양하다. 500명 수용 가능한 강의실도 있다.>
학교에 요청해서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사용할 강의실 하나를 빌렸다. LSE에 한국인이 110명 정도 있었다. 당연히 한인 학생회도 있었다. 학생회를 통해 영어 공부할 사람들 오라고 공지했다. 이렇게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은 그때뿐이었다. 10월 1일 개강하면 이럴 시간이 없다. 런던대 연합 한인 학생회에 소문나서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제법 많이 모였다. 강의실을 큰 곳으로 바꿔야 했다.
후배들은 영어를 잘했다. 8명 모두 아이엘츠 8.5점, 9.0 만점이었다. 후배 한 명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생활 영어 10문장, 다른 한 명은 학교에서 사용하는 영어 10문장씩 만들었다. 만화를 잘 그리는 후배가 있었는데, 만들어 준 문장을 만화로 상황극을 만들어 재밌게 그렸다. 그렇게 만든 자료는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서 배포했다. 다른 학교에서 온 학생 중에 이민 1.5세대 학생들이 있었는데, 도와주러 온 학생들이었다. 그 학생들은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힌 학생들이라 문법은 거의 모른다. 연음 발음과 표현, 상황극 만드는 것을 도왔다.
기억력은 휘발성이 강해서 뇌에 오래 저장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뇌에 저장하려면 뇌에 이벤트가 발생해야 하는데, 중세시대 사람들은 방법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가르칠 때 강가에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을 마친 후 학생을 강에 집어 던졌다. 그러면 뇌는 이렇게 기억한다. ‘저 새끼가 나에게 이걸 가르치고 강에 던졌다.’ 때론 뺨을 때리기도 했다. 학대받은 기억이 평생 잊히지 않는 이유가 뇌에 이벤트가 발생해서 그런 것이다. 슬프고, 재밌고, 기쁜 일도 마찬가지다. 발생하는 이벤트 강도에 따라 뇌에 저장하는 기간이 다른데, 유난히 학대받은 기억이 오래 남는다.
영어를 가르칠 때마다 사람들을 템스강에 던질 수는 없는 일이다. 뺨 때리는 짓은 더더욱 못 할 짓이다. 그걸 웃긴 만화와 상황극으로 대신했다. 뺨을 때리거나, 강에 던지는 것보다는 효과가 약하겠지만, 어릴 때 그림 동화책과 만화책으로 말을 배우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쓸데없는 소린 빼고 속성으로 빠르게 가르쳤다. 도움이 되긴 했던 모양이다. 날이 갈수록 찾아오는 학생이 늘어났는데, 300명은 넘어 보였다.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하는 자리도 생기고, 여러모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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