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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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러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시리얼과 식빵으로 끝내고, 9시까지 학교에 갔다. 10시에 시작하는 날도 있는데, 10시에 시작해도 9시까지 강의실에 먼저 가서 조용히 공부했다. 매일 오전에는 필수 과목을 수강했다. 석사, 디플로마, 경제학, 금융학, 회계학과 등 공통 과목 수강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9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Old Theatre나 Peacock Theatre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11시에 강의가 끝나면, 오후 1시 반까지 시간이 빈다. 개인적인 학습이나 과제, 그룹워크 등 학생들끼리 공부하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가졌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날에는 12시에 끝나는데, 남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냥 밥 먹고 쉬었다. 일찍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다가, 오후에 돌아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추억의 Wright's Bar>
점심 메뉴는 어딜 가나 뻔했다. 학생 식당은 1.50파운드부터 3파운드 미만인데, 독립 카페는 조금 더 다양하고 맛있는 메뉴들이 있었다. Wright's Bar라고 하는데, 학교 안에 있지만, 외부인이 운영했다. 보통 3파운드 미만인데, 좀 괜찮은 메뉴는 5파운드 정도 했다.
빨리 밥 먹고, 도서관에 자러 갔다. LSE 도서관이 공사 중이었다. 11월 27일에 개관했는데, 10월에는 공사 마무리 단계였기 때문에 이용은 가능했다. 하지만 공사 소음 때문에 집중해서 공부하긴 어려웠다. 도서관 사서들이 책 정리한다고 분주한 것도 정신을 산만하게 했다. 점심시간에는 공사 작업자들도 식사하러 가니까, 조용해서 낮잠 자는 용도로 이용했다. 개관 후에도 점심때는 도서관에서 잤다.

<옛날에는 누워서 잠자기 좋은 소파가 많았다.>
항상 라미와 파하드 형님이 함께했는데, 누워서 자기 좋은 쿠션 소파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 자리 잡았다. 내가 자니까 파하드 형님도 나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잤다. 우리가 자는 동안 라미는 내 노트를 베꼈다. 오후 강의가 시작될 무렵 라미가 깨워주는데, 항상 웃으면서 깨워줬다. 나도 눈뜰 때마다 따라 웃었다. 아랍 여성들이 히잡 쓰고 다니니까 미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데, 알고 보면 미인들이 많았다. 라미는 한국의 배우 임수정 씨를 닮아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사우디 임수정이라고 불렸다. 라미는 영국에서 히잡을 거의 안 썼다. 어쩌다가 한 번씩 쓰고 왔는데, 히잡 쓴 모습도 귀여웠다.
오후에는 그룹별 맞춤 강의가 있었다. 수학 캠프에서 점수가 낮았던 학생들은 보충 수업을 받아야 했다. 수학 캠프에서 80점 이상이면 어드밴스 그룹에 들어갔다. 어드밴스 그룹에 배정된 학생들은 심화 과정을 배우는데, 최상위권 점수를 받은 학생 일부는 또 다른 그룹으로 빠졌다. 연구 석사 2학년과 박사생들 그룹에서 함께 공부했다. 매일 함께하지는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 토론이나 그룹워크, 가끔 연구 미팅이나 세미나 일정이 있으면 일주일에 두 번 함께 했다.
1학기 때는 이렇게 운영하고, 2학기 때는 모두 함께 심화 과정에 들어갔다. 1학기 때 먼저 심화 과정을 시작한 학생들이, 뒤에 들어온 학생들과 같은 그룹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 공부하는 방법은 개인 편차가 심해서 딱히 뭐라 말을 못 하지만, 시간 낭비하기 싫으면 입학 전에 논문 주제를 먼저 정하고 오는 것이 좋다. 공부할 방향을 미리 정해두고 시작하면, 이것저것 쓸데없이 건드리다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다. 1학기 때 교수님이 논문 주제 빨리 정하라고 다그치시는데, 2학기 때 지도 교수가 배정되고, 3학기 때 지도 교수가 확정됐다. 중간에 논문 주제가 바뀌는 일이 흔해서, 3학기 때 확정되는 것이다.

<유학 생활의 절반 이상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보통 오후 5시~6시에 강의가 모두 끝난다. 가끔 워크숍이나 세미나가 연이어 진행될 때면, 오후 7시~8시에 끝날 때도 있었다. 오후 강의가 끝나면 각자 갈 길 갔다. 저녁 먹을 사람, 펍에서 토론할 사람, 컴퓨터실에서 통계 프로그램 코드 짤 사람, 도서관 갈 사람 등등 갈라지는데, 나는 계량경제학 과제가 있을 때만 컴퓨터실에서 공부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도서관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다 같이 저녁 먹고 도서관에 갔다. 하루 두 끼를 학교에서 먹으려니까 물리기도 하고, 맛도 없어서 언젠가부터 저녁을 안 먹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으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어서, 안 먹고 공부하는 것이 더 나았다. 저녁 먹고 나면 거의 8시다. 새벽 3시까지 공부하다 자는데, 저녁을 먹으면 자기 전에 배고파서 또 식사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UCL 말고도, 다른 학교 체육관이 몇개 더 있었는데, 모두 좋은 체육관이었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저녁 먹을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라미와 파하드 형님도 8시에는 귀가했다. 나는 중간에 과일이나 에너지 바 하나 먹고, 9시 반까지 공부하다 나왔다. 바로 집으로 안 가고, UCL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고 집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11시쯤인데, 아침과 점심은 대충 먹어도, 저녁만큼은 제대로 챙겨 먹었다. 식사 후 양치하고, 차 한잔 들고 책상에 앉으면 12시였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오후 9시부터 채팅으로 토론을 하는데, 나는 늦게 와서 12시부터 끼어들었다. 그래도 괜찮은 게, 채팅 기록은 남아 있어서 늦게 와도 앞의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에세이 과제가 있거나, 세미나 일정이 잡힌 주간에는 항상 책을 주제로 토론했다. LSE가 끔찍했던 점이 독서량이었다. 학업량도 만만치 않은데, 방대한 독서량은 정말 끔찍했다. 교수님이 참고 서적 리스트를 주시는데, 책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정독은 거의 불가능했다. 주요 단어들만 캐치하며 빨리 읽다가, 중요한 맥락에서만 정독했다.
저자의 주장과 논거들만 요약하고, 발췌해서 노트에 옮겨적었다. 그룹 친구들과 채팅으로 공유하고 저자의 주장에 대한 논거가 타당한가를 두고 토론했다. 그러다 보면 책을 안 읽은 친구들도 그 책에 대한 요지를 파악하게 되는데, 우린 그렇게 시간을 벌었다. 단순히 책만 읽어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토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다른데, 토론을 통해 얻는 지식이 훨씬 많았다. 공유할 수 없는 책도 있는데, 그런 책은 각자 읽었다. 토론시간에 제한을 안 두면, 밤샐 기세라 3시까지 토론을 마무리하기로 약속된 채팅이었다. 채팅을 끝내고, 내일 학교 갈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면 3시였다.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공부했다.

<개인적으로 소규모 세미나를 더 선호했다.>
대학별로 세미나 활용법은 다를 것이다. 튜토리얼도 마찬가지다. LSE는 세미나 시간에 튜토리얼을 함께 진행했다. 연구 세미나처럼 참여 인원이 많은 세미나는 튜토리얼을 진행하지 못한다. 이벤트 급으로 대형 세미나도 있지만, 튜토리얼을 함께 진행할 때는 보통 15명 이하의 소규모로 진행됐다. 세미나에는 외부 초청 인사가 자주 왔다. 타 대학교수, 중앙은행, 금융권에 종사하는 임원급 인사가 초빙 강사로 오는데, 가끔 경제 관료와 외국 인사들이 오기도 했다. 실무 특강이 끝나면 준비된 소파에 교수님과 앉아, 세미나 주제에 대해 대담 형식으로 토론을 했다. 이때 수강생들도 끼어들어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피스아워(Office Hours)라는 것도 있는데, 교수님들이 사무실을 개방해두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학업 관련 일대일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기다리는 학생들이 많아서 지도받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대기 줄이 길면 그냥 포기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이메일로 교수님께 질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답을 주시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답을 안 주시는 분도 더러 계셨다.

<러셀 그룹 학교들>
2001년 당시 LSE의 학생 만족도는 러셀 그룹 중에서 최하위였다. 지금은 1위라는데, 옛날에는 진짜 욕 나왔다. 연구 실적을 평가해, 학교 등급을 매기는 시스템이 있었다. 등급만 매길 뿐 순위는 없는 평가였다. Research Assessment Exercise(RAE)라고 하는데, 4~5년에 한 번씩 평가했다. 01/02년이 실적을 평가받는 해였다.
교수님들이 어디선가 연구 용역 수주를 받아 오시는데, 너무 많이 받아 오셔서 피곤했다. 연구 실적 올리려고 석박사들을 모두 동원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학교 만족도에 대한 나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65점 정도였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하루는 중간에 땡땡이치고 공원을 배회한 적도 있었다. 성공적인 유학 생활은 멘탈 관리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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