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기(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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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과 일요일은 절대 공부 안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하루도 안 쉬고 매일 3시간씩 자면서 공부만 했었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왔는데, 실컷 자고, 기타치고, 처놀면서 대학 온 놈들이 있었다. 그놈들 중에는 전국 수석까지 한 놈이 있었다. 수석보다 더한 놈도 있었는데, 자위하다 온 놈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쳤는지 오른팔에 근육이 어마무시했다. 전문용어로 ’딸근‘이라 부르는 근육이었는데, 여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 친구를 ’달근‘이라 불렀다. 그놈 전공이 생명공학이었는데, 나에게 많은 의문을 남긴 놈이었다.
그놈들을 만난 후 인생사 허무함을 느끼며, 공부하는 방법을 바꿨다. 학교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것을 안 풀어주고 계속 달고 있으면, 뭘 하건 효율이 떨어진다. 심하면 번아웃 상태에 빠지는데, 그 상태까지 가면 망한다. 주말은 스트레스 해소하는 데 전념했다.

<고가 취미로 여겨져서, 학생회 지원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여가 생활로 이것저것 많이 했다. 비행기 타고, 모터보트 타고,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런던대 연합학교 동아리 중에 비행클럽, 글라이딩 클럽, 스카이다이빙 클럽을 가진 학교는 임페리얼 컬리지가 유일했다. 지금은 런던대에서 독립해서 타 대학 학생들이 가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아리 회비를 학생회에 내면, 학생회에서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돈을 지원해 준다. 외부 강사비용, 장소 대관료 등을 지원해 주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장비는 지원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런던에 와서 버스킹도 해봤다. 버스킹이 불법은 아니지만, 소음과 공공질서 위반은 단속했다. 스피커의 데시벨 상한이 있었고,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가 되면 안 됐다. 통행에 방해가 안 되게 벽에 붙어서 연주하거나, 넓은 길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록 계열 음악은 소음 신고가 많아서, 록을 부르지는 못했다. 그래도 통기타와 색소폰으로 재밌게 놀았다. 자작곡을 연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 커버곡이 많았는데, MP3에 간주를 넣어 스피커에 연결해 노래했다. 필요한 전기는 스피커에 내장된 배터리를 충전해서 사용했다.

<시내 보다는 시원한 강가에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발라드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다. 버스킹할 때 기타로 팝 발라드를 많이 불렀다. 가져온 통기타는 가수 故 신해철 형님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한국 가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해철 형님이었다. 학부 1학년 때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서강대 축제에 놀러 가서 형님을 만났다. 해철 형님이 서강대 출신이어서, 서강대 축제에선 늘 형님이 노래했다. 노래 한 곡 부를 기회를 줘서 불렀는데, 내가 해철 형님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가 똑같다며 다들 놀라워했다. 일부러 모창한 것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따라 한 것일 수도 있다. 평소 목소리는 형님과 달랐다.
밴드 활동을 하면, 현직 가수들과 친해지는 기회가 종종 생긴다. 특히 이태원에서 놀면 그런 기회가 많았다. 싱어송라이터 유영석 형님이 곡을 몇 번 주셨는데, 내가 고사했다. 그 형님은 자꾸 나에게 슬픈 곡만 주셔서, 내가 부르기 어려웠다. 노래 부를 때 감정 잡고 부르는데, 나는 슬픈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슬퍼도 록발라드면 부르는데, 그냥 슬픈 발라드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2001년 추석 때, 형님한테 안부 전화했다가 영화 OST에 사용할 곡을 제의받았는데, 노래 가사가 우울해서 또 거절했다. 영화 클래식 OST로 사용된 ’사랑하면 할수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Lonely Night>
내가 정말 부르고 싶었던 곡은 록밴드 부활의 ‘Lonely Night’이었다. 이스트본에 있을 때, 피어에 있는 클럽에서 한번 부른 적이 있다. 한국어로 불렀는데도 반응이 좋았다. 95년에 록밴드 부활에서, 보컬이었던 김재희 형님을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는 형님들 소개로 김태원 형님을 만나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했다. 하지만 합류하지 못했다.
리더였던 태원 형님이 나에게 학교 그만두고 밴드에 올인하길 원하셨다. 어린 시절,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 다니면서 노래하고 싶었는데, 그건 형님들이 원하지 않았다. 얼마 후 박완규 형님이 보컬로 합류했다. 비록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룹 부활의 노래를 좋아한다.

<케니지의 열혈 팬이다.>
버스킹에서 발라드를 자주 노래했지만, 색소폰도 자주 연주했다. 케니지 광팬이어서 늘상 케니지 곡을 연주했다. 중학교 다닐 때, 케니지의 색소폰 연주에 반해버렸다. 그 당시 색소폰 가격이 대기업 신입사원 한 달 월급이었는데, 어머니께 말 잘 듣는 아들이 되겠다고 사기 쳐서 얻은 색소폰이라 보물처럼 다뤘다. 소프라노 색소폰인데, 12년 경력으로 나름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버스킹으로 한두 시간 공연하면 50~70파운드 정도 수입이 생겼다. 돈 벌자고 노래한 것이 아니어서, 수입이 적어도 개의치 않았다.

<버스킹 라이선스 카드>
버스킹 소음 관련 민원이 많아서, 이를 관리하기 위해 라이선스 제도가 도입됐다. 버스킹에 대한 세금 부과와는 별개라는데, 세금을 효과적으로 징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 같다. 그 제도가 2001년에 도입됐는데, 1년간 계도기간을 거치고 2002년부터 시행됐다. 런던 특정 구역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코번트 가든, 소호, 레스터 스퀘어에서 시작됐다.
코번트 가든에서 버스킹을 하려면, 그곳을 담당하는 행정 기관에서 오디션 비슷한 것을 봐야 했다. 오디션에서 합격한 사람만 그 동네에서 버스킹을 할 수 있었다. 허가만 미리 받아두려고 색소폰 들고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했다. 그 동네에서 한번 공연했었는데 수입이 굉장히 좋았다. 수입이 좋은 만큼 버스킹을 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내 차례가 너무 후순위면 포기하고 템스강 남쪽으로 갔다. 남쪽은 라이선스가 필요 없었고, 자리도 많았다.

<사진 속 강가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없어진 것 같다.>
버스킹은 낮에만 하는 것이 좋다. 뉴몰든에 있을 때, 답답한 마음에 혼자 색소폰 가지고 햄턴 코트 궁전 앞에 간 적이 있다. 밤 11시쯤에 갔는데, 궁전 앞에 주차장이 있었다. 제대로 된 주차장이 아니라 가로등도 없는 비포장 간이 주차장이었다. 템스강 작은 줄기가 주차장 옆을 흐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혼자 색소폰을 연주했다. 케니지의 The Moment, Forever in Love, Sentimental, Silhouette 등을 차례대로 연주하는데, 느닷없이 경찰이 나타났다. 여기서 연주하는 것이 불법인가? 혼란스러웠다.
경찰이 여기서 뭐하냐고 묻더니, 밤에는 위험하니 빨리 귀가 하란다. 그때 갑자기 주차장에 있던 차들이 거의 동시에 시동 걸고, 도망치듯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주차된 차량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강줄기 건너편에 주택가가 있어서, 그곳 주민들 차량인 줄 알았다. 시동 안 걸고 있던 차들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봤는데, 남자는 차 밖으로 끌어내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차 안에 있는 여성에게 저 남자가 진짜 남친이 맞는지 확인했다. 알고 보니 그 주차장은 젊은 사람들의 은밀한 사생활 장소였다.
내가 아주 크게 실수했다. 그런 곳인 줄 알았으면, 경쾌하고 신나는 곡을 연주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내 욕을 얼마나 했을까?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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